[밀물썰물] 여성 차별하는 종교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경북 청도의 운문사는 큰 절이다. 현재 수행하고 있는 스님이 수백 명이고, 선원·강원·율원을 두루 갖추었다. 신라 진흥왕대에 창건됐다고 하니 그 역사가 1500년에 가깝다. 총림의 위상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총림은 규모나 역사에서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수행도량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조건을 엄격히 따져 총림을 지정한다. 기본적으로 참선·경전·계율 교육기관을 모두 갖춰야 한다. 현재 총림은 해인사·송광사·통도사·수덕사·백양사·동화사·쌍계사·범어사 8곳이다.

운문사는 조건을 다 갖췄는데도 거기에 끼지 못했다. 운문사가 비구니(여 수행승) 절이라 그렇다고 짐작하는 이가 많다. 현재 운문사 최고 어른은 한국 불교의 대강백이자 구순을 훌쩍 넘긴 명성 스님이다. 그에게 운문사가 총림으로 나아가지 않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노스님은 말도 꺼내지 말라며 손사래 쳤다. 비구(남 수행승) 중심의 종단에서 비구니 총림은 언감생심이라는 게다.

불가에서 여성은 오랫동안 업신여김을 받았다. “전생에 업이 많아서 여자로 태어났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불자가 많다. 말로만이 아니라 구조적·제도적으로도 여성을 차별한다. 비구니는 반드시 비구 지도자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아무리 법력이 높아도 비구에게 먼저 절해야 한다. 총무원장 등 종단 내 고위 직책도 비구에게만 자격을 부여한다.

지난달 29일 국가인권위가 대한불교천태종에게 성차별적 조치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천태종은 음력 정월 초하루와 2월 초하루엔 여성의 절 출입을 막아 왔다. 1년 중 가장 정(淨)한 두 날에 ‘부정(不淨)한’ 존재인 여성을 절에 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국가인권위의 권고에도 천태종 측은 ‘1대 종정의 유지에 따른 것”이라며 “종교마다 지향하는 바와 신앙의 내용·형식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여성 차별은 불교만의 일이 아니다. 기독교를 비롯해 상당수 종교가 남성 중심주의적 교리와 신념을 견지하는 게 사실이다. 각 종교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여성 차별은 다른 문제다. 불교에 남아 있는 차별적 인식은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 당시 사회의 인식과 관습에 기인한다. 다른 종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대의 관점으로 현대의 여성을 대하는 게 옳을 리 없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體衆生 悉有佛性)이라,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게 불교의 기본 가르침 아닌가. 차별은 그 가르침에 맞지 않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