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74>‘저희 나라’는 없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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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요즘 부쩍 저희 나라 위상이 높아진 것을 느껴요.”

여기서 ‘저희 나라’는 틀린 말이다. 식구끼리 ‘저희 집, 저희 아빠’라고 쓰지 않듯이, 구성원들끼리는 ‘우리 회사, 우리 동네’처럼 ‘우리나라’로 써야 하는 것. 또, 상대가 외국인일 경우엔 더더욱 써서는 안 된다. ‘저희’는 ‘우리’의 낮춤말인데, 나를 낮춘다는 건 결국 상대를 높인다는 뜻. 하지만 나라와 나라는 대등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저희 나라’로 낮출 이유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또 그 누구에게든 그럴 권한도 없다.

“그래서 엑스포 관계자들도 한국이 늦게 시작했지만 아직 시간이 1년 이상 남아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뛰면 반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저희에게도 조언을 주고 있고 저희도 지금 차곡차곡 지지 국가를 하나씩 하나씩 이끌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에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인데, 이 가운데 ‘저희’ 역시 부적절한 낮춤말. 우리나라나 우리 정부를 낮춰 ‘외국의 엑스포 관계자들’을 높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래 30년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 (시진핑)주석님을 직접 뵙고 협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난달 24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이 대독한, 윤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낸 축하서한 가운데 한 구절이다. 한데, 여기 나온 ‘뵙고’ 역시 적절해 보이지 않는 말.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뵈다: 웃어른을 대하여 보다.(그분을 뵈면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난다./…/그럼 저 이외에 같은 임무를 가지고 장군을 뵈러 온 사람이 있었단 말입니까?〈유현종, 들불〉/그렇지 않아도 이따가 날이 어두워지면 선생님을 한번 찾아가 뵈려던 참이었는데요.〈이청준, 춤추는 사제〉

이처럼, ‘뵈다’는 웃어른에게 쓰는 말이다. 다시 표준사전을 보자.

*뵙다: 웃어른을 대하여 보다. ‘뵈다’보다 더 겸양의 뜻을 나타낸다.(말씀으로만 듣던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막음례라는 여자가 진사 댁 마님을 뵙고자 찾아왔노라고 통기를 넣으라 일렀다.〈문순태, 타오르는 강〉/나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할아버지를 뵙는 게 무서웠기 때문에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즉, ‘뵙다’는 ‘뵈다’보다 더 자신을 낮추는 겸양이다. 그러니 ‘주석님과 직접 협의’면 충분했던 것. 몇몇 매체는 ‘직접 뵙고’를 ‘대면해’로 고쳐 큰따옴표 없이 내보냈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정확하지 않은 보도가 된 셈이었다.


이진원 기자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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