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층간소음 피해, 이제는 해결되나?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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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연 경제부 부동산팀장

‘아파트에서 소음이 적잖은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에서 들려오는 갖가지 소리에 신경쇠약증에 걸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중략)…“옆집에서 싸움을 하거나 아이들이 뛰어다니거나 피아노라도 치면 그 소리들을 고스란히 다 들어야지요” 아파트 생활 8년째인 주부 박미경(40) 씨는 아파트에서 이웃을 잘못 만나면 아주 골치가 아프다고 덧붙인다.’

요즘 기사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이 글은 1986년 2월 한 일간지에 ‘아파트의 짜증-이웃집의 소음’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 일부이다. 부산에서 아파트 소음 문제로 칼부림이 발생했다는 기사를 읽은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36년이 지난 요즘에도 아파트 소음은 이웃 갈등의 씨앗이다.


나날이 심각해진 층간소음 피해

단순한 다툼 넘어 방화, 살인까지

집값 오른만큼 품질 개선되어야


굳이 옛날 기사까지 찾아가며 아파트 소음의 역사를 더듬은 것은 최근 정부의 층간 소음 대책 발표 때문이다. 약 10년 전 경찰서 출입 기자 시절, 수없이 접했던 층간소음 관련 범죄가 떠오르며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나’ 싶어 허탈했다.

‘째려본다는 이유’로 폭행 사건이 잦았던 유흥가와 달리 주택가 이웃간 폭행 사건은 층간소음이 주된 원인이었다. 단순히 폭행을 넘어 살인이나 방화 등 강력범죄로 비화되는 일도 흔했다.

당시 평범한 사람이 소음으로 다투다 원한이 깊어지고 범죄자로 전락하는 과정이 충격이었다. 선배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더 충격적인 답이 돌아왔다. “내가 경찰 사건 취재한 8년 전에도 종종 발생한 일이었어!”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층간소음 분쟁은 더욱 늘었다.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층간소음 신고는 2019년 2만 6257건에서 지난해 4만 6596건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사람들이 팍팍해진 세상살이에 더 민감해진 걸까? 한 건설업계 지인은 분노가 많아진 현대인의 특징에서 원인을 찾았다. 사람마다 소음 민감도가 다른데, 어떻게 시공할 때 다 맞추냐고 했다. 최근 민감해진 사람이 늘었는데, 같은 소리를 듣고도 무감각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바닥 두께를 더 두껍게 만들도록 법으로 정하면 어떻겠냐고 하니, 두꺼워진 만큼 가격이 올라가면 결국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다.

층간소음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지인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층간소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공급자 주도의 아파트 시장에서 건설업계의 느긋한 태도가 큰 원인이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모은 재산을 쏟아 붓고도 모자라 억대의 빚까지 지면서 집을 산다. 하지만 그 품질은 기대에 못미치는 경우가 잦다.

최근 부산의 한 신축 아파트에서 인분이 발견되고, 다른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폭포수처럼 물이 새기도 했다. 올 여름 수도권 폭우로 강남의 유명 고급 아파트 주차장과 커뮤니티 센터 등이 침수되면서 건설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모두 1군 건설사로 꼽히는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에서 생긴 일이다.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도 층간소음 문제가 ‘영구 미제사건’처럼 치부되는 데에 한몫했다. 아파트 층간소음 규정은 사전인증제로 진행됐다. 시공할 바닥재를 관련 기관에 들고가서 테스트를 거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험실과 현장의 결과는 달랐다.

2019년 감사원 조사에서 이미 시공된 민간과 공공 아파트 191가구 중 96%는 바닥구조 제품이 시공 전 받은 성능등급보다 낮은 성능을 보였고, 60%는 층간소음 최소 성능 기준에 못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보고서의 영향으로 올해 8월부터는 사후확인제도가 시행됐다. 아파트 완공 직후 층간소음 측정을 의무화해 성능검사 결과 기준에서 미달할 경우, 지자체는 건설사에게 보완 시공과 손해배상 등의 조치를 권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아파트 바닥두께를 강화하면 용적률을 높이고 높이제한을 완화하는 당근책을 비롯해 층간소음 저감 매트 구매 비용 일부를 지원한다거나 층간소음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도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정책 효용성에 논란이 일지만, 그 결과는 좀더 지켜봐야 알 일이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1986년 1월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15.9를 기록했다. 서두에 소개한 층간소음 기사가 작성된 해이다. 지난달 지수는 100.4를 나타냈다. 36년 동안 층간소음 피해는 여전한데, 지수는 6배 가까이 올랐다. 집값 상승률만큼 품질도 올라가야 한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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