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층적·다층적 기억 지닌 동아시아 도시들을 읽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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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도시 이야기 / 도시사학회·연구모임공간담화

식민·문화유산·산업군사 도시로 분류
호이안·부산 등 23개 도시 낱낱 해부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는 ‘도시로 읽는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다.

식민도시, 문화유산도시, 산업군사도시, 라는 3개 분류를 따라 21편 글에 23개 도시를 다뤘다. 대전 군산 다롄 하얼빈 나하 페낭·말라카·싱가포르 달랏을 ‘식민도시’로 칭했고, 평양 부산 타이난 타이베이 도쿄 마쓰야마 호이안을 ‘문화유산도시’라 이름했으며, 울산 부평 흥남 선양 선전 기타큐슈 블라디보스톡을 ‘산업군사도시’로 분류했다.


동아시아 도시는 중층적이고 다층적인 기억을 지닌 도시들이다. 예컨대 부산은 역사도시이면서 식민도시이며 산업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을 송두리째 소화할 수 있다면 ‘동아시아적 조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득의의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호이안은 1999년 베트남에서 ‘후에’에 이어 두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다. ‘베트남의 경주’라는 호이안에 동아시아 역사가 깃들어 있다. 16세기에 일본인들이 들어왔고, 17세기 일본인들이 간 자리에 중국인들이 들어왔다. 그 세기의 전환에 따라 호이안의 일본인 구역과 거리는 중국인 구역과 거리로 변했다고 한다. 호이안 교역은 17세기에 절정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인근 다낭이 부상하면서 18세기에 정체를 맞고, 19세기에 항구 기능을 상실했다. 역설적으로 그 잊혀짐을 통해 근세부터 식민시기까지 다양한 역사문화유산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산은 어떤가. 식민도시 원도심의 색이 바랬다. 옛 부산역, 옛 부산우편국, 옛 부산세관 등 식민지 시기에 세웠던 멋진 건물들은 화재와 무관심 속에 거의 다 파괴됐다. 외부인들이 보기에 원도심은 퇴색됐고 해운대가 바다와 고층 빌딩으로 부산을 압도적으로 대표하고 있다. 옛것을 다 파괴한 뒤 눈을 돌린 것이 근현대 부산 사람들의 삶이 집적된 감천문화마을과 산복도로다. 그러나 책은 그것은 ‘가난의 상품화’가 아닐까 라며 다소 비판적이다. 하지만 ‘가난의 상품화’는 서울 빼고는 다 소멸돼 가는, 가난해지고 있는 한국 모든 도시에서 일어날 일의 예고편 같다고 지적한다.

홍콩 위쪽에 위치한 경제특구 선전은 중국 개혁·개방 1번지다. ‘개혁과 혁신은 선전의 근본이고 선전의 혼이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으며, 빠른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선전속도’의 도시다. 그 속에는 개혁·개방의 시작이자 성공을 상징하는 뤄팡촌도 있지만, 호적이 없는 다수의 이주자 농민공이 거주하는 문제공간도 있다. ‘선전에 오면 선전인일 수 있고, 선전인임에 틀림없고, 선전인이어야 한다’라는 구호는 그 도시의 개방적 자신감을 충분히 상징하는데 그 개방의 실험이 과연 성공할 것인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울산은 변방의 읍성에서 대표 산업도시로 부상한 곳이며, 대전은 1904년 경부선 개통으로 만들어진 신도시이고, 하얼빈은 러시아가 청국에서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면서 탄생한 도시로 소개한다. 나하는 류큐왕국의 수도 슈리의 문호 역할을 하던 항구에서 2차 대전 이후 주변지역을 병합하면서 오키나와 수도 위상을 지닌 도시로 변모했다고 한다. 저 남쪽 싱가포르에서 저 북쪽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격동을 치러낸 동아시아를 크게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도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도시사학회·연구모임공간담화 지음/서해문집/444쪽/2만 7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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