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위험한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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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소설가

더위가 한풀 꺾인 저녁이면 나와 아이들은 산책을 간다. 완만한 구릉 위에 있는 빌라는 주위가 숲이라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나무와 새들의 그림자를 스미듯 볼 수 있다. 며칠 전에는 길가에서 뱀을 보았다. 새끼손가락만 한 몸통의 아주 어린 뱀이었다. 나는 그게 길가에 버려진 노끈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구불거리며 살아있는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게 뱀이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 나는 소리를 질렀다. 뱀이란 내게 그런 존재였다. 한 번도 나를 위협하거나 해한 적은 없지만 내 눈앞에 나타나면 나는 말 못 할 공포에 휩싸인다. 문득 그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이 세계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주입한 것은 아닐까. 어떤 음모 같았고 나는 그것을 극복해보고 싶었다.

나는 한동안 조금 떨어져서 뱀을 지켜봤다. 딱히 어딘가로 이동한다거나 목적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일정한 자리에서 몸을 접었다 펴는 것이 수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작은 아이의 머리에 있던 리본이 주인을 잃고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바닥에 일어난 균열처럼 보였다. 뱀은 다양한 방식으로 내게 존재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은 여전히 공포와 뒤섞였다. 하지만 뱀은 주입된 공포를 이겨내 보겠다는 나의 의지와 달리 싱겁게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아는 것, 뱀은 위험하다는, 어쩌면 독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고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진실일까? 그게 진짜 아는 걸까? 뱀을 사랑하고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린 날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한 양육은 나를 안전한 아이로 만들었다. 공포를 조성하는 교육은 즉각적이고 효과적이라 안전한 아이는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됐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는 많은 신비가 사라졌다.

지난주 집 앞 전시컨벤션 센터를 지날 때, 선물박람회라고 쓰인 현수막을 보고 아이가 갑자기 저기 정말 재밌겠다고 가보자고 했다. 나는 순간 거기에 아이의 흥미를 끌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싶어서 뭐 하게? 라고 물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남이 받은 신기한 선물을 보면 얼마나 좋겠냐고 했다. 엄마, 얼마나 재밌고 좋은 선물이 많겠어요, 그러니까 박람회까지 하면서 보여주는 거잖아요, 라고 했다. 나는 웃었다. 아이는 그 아래 적힌 우수 기업 및 농특산품 전시 및 판매라는 글자를 못 본 모양이었다. 아이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돌아서는데 엉뚱하다 싶으면서도 재밌겠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 박람회가 있다면.

나는 아는 것이 그런 즐거움의 발목을 잡을 수 있겠다 싶었다. 또 섣부른 앎이 다른 입장과 이해를 놓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검색으로 손쉽게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단편적인 앎일 때가 많다. 종이 사전을 찾을 때는 한 단어를 찾기 위해 그 언저리의 단어를 다 봐야 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그 단어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고 선명해졌다. 노을을 찾으면 노을빛도 알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너울과 꽃노을, 까치 노을까지.

정확하고 명징한 하나를 안다는 것은 그 주변을 놓치는 일일 수 있겠다 싶다. 아는 것(안다고 믿는 것)이 때때로 위험한 이유 같았다. 세계는 폭염과 가뭄으로, 우리는 폭우로 여름을 지나고 있다. 환경이 우리에게 공평(보편적 위기라고)하게 재앙으로 돌아올 것을 안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불평등하게 온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지난 폭우로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과 거동이 힘든 장애인에게 가장 먼저 닥친 생명의 위협을 보면서 안다는 것이 안다는 것으로 그칠 때 그것이 진짜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초라한 경험은 앎에 대한 게으름에서 나온 모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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