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끝낸 주역에 마지막 인사” 고르비 추모 행렬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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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장례식 3일 엄수
‘노벨평화상’무라토프 영정 들어
젊은 층 등 수천 명 배웅 나서
푸틴 대통령은 일정 이유 불참

3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엄수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장례식에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고인의 영정사진을 들고 운구행렬을 이끌었다. 무라토프는 1993년 고르바초프의 자금 지원으로 신문사를 설립하는 등 고인과 인연이 깊었다. AP연합뉴스연합뉴스 3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엄수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장례식에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고인의 영정사진을 들고 운구행렬을 이끌었다. 무라토프는 1993년 고르바초프의 자금 지원으로 신문사를 설립하는 등 고인과 인연이 깊었다. AP연합뉴스연합뉴스

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소비에트 연방) 대통령의 장례식이 3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엄수됐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부터 모스크바 도심의 ‘하우스 오브 유니언’ 필라홀에서 거행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는 고인을 배웅하기 위해 수천 명의 추모객이 몰렸다. 추모객들은 고인의 시신이 놓인 관 앞에 꽃다발을 헌화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외동딸인 이리나와 두 손녀가 곁을 지켰다.


한 러시아 시민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러시아에 민주주의를 가져다주고 러시아를 전 세계에 개방한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어 조문하러 왔다”고 말했다. 다른 시민은 “그가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을 더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모 인파 중에는 소련 시절을 기억 못 하는 젊은 러시아인들도 적지 않았다. 역사학자 안드레이 주보프는 “이들의 동행은 현 정치 시스템에 대한 무언의 항의 표시”라고 평가했다.

고인의 시신은 노보데비치 묘지로 운구돼 1999년 백혈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라이사 여사 옆에 안장됐다. 고르바초프의 마지막 길에는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동행했다. 그는 고인의 영정사진을 들고 운구행렬을 이끌었다.

무라토프는 1993년 고르바초프의 자금 지원으로 신문사 노바야 가제타를 설립하는 등 생전 고인과 인연이 깊었다. 노바야 가제타는 올 3월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하다가 러시아 당국의 처벌 위협 속에 폐간했다. 무라토프는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자신이 받은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았다. 메달은 1억 350만 달러(약 1336억 원)에 낙찰됐다.

고인도 1990년 냉전 종식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철의 장막을 걷어내고 냉전을 평화적으로 끝낸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자국에선 옛 소련의 몰락을 가져온 배신자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옛 소련의 붕괴를 “20세기 최대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국장(國葬)으로 치러지지 않았다. 다만 러시아 정부가 경호와 의장대를 지원하는 등 국장급 장례 절차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러시아 지도자 가운데 국장으로 치러지지 않은 장례식은 1971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마지막이었다. 수수하게 치러진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2007년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서거 당시 푸틴 대통령이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국가 애도일을 선포한 것과도 대조된다. 푸틴 대통령은 업무 일정상의 이유를 들어 장례식에도 불참했다. 푸틴은 지난 1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있는 모스크바 중앙임상병원을 개인적으로 찾아 헌화했다.

이날 독일 수도 베를린에는 조기가 걸렸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고르바초프는 동독 공산 정권에 대한 군사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 서독의 흡수통일을 사실상 묵인했다.

고인은 지난달 30일 당뇨와 심장 질환 등으로 인한 오랜 투병 끝에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일부연합뉴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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