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표절 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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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정권이 바뀌고 고위 공직자 하마평이 시작되면 거의 어김없이 거론되는 문제가 공직 후보자의 논문 표절이다. 지금까지 상당수 후보자가 논문 표절로 낙마했다. 최근에는 대통령 부인까지도 표절 시비에 연루돼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표절이란 남의 저작을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이용하는 비도덕적 행위를 말한다. 저작권 위반이 법적 책임에 국한된 문제라면 표절은 이보다는 좀 더 넓게 적용되는 도덕적 기준이어서 저작권을 위반하지 않은 행위라도 때로는 표절에 해당한다. 예술과 창작에서는 아이디어의 독창성이 핵심이므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애매할 때가 많지만, 학술 논문에서는 기계적인 절차만 적용해도 표절을 걸러 내기 그다지 어렵지 않다.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중복 표현의 정도가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변명의 여지없이 표절이다. 지금처럼 논란거리가 될 수 없는 사안조차도 ‘논란’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사회 전반의 표절 불감증을 반증한다.

국내 언론, 기사 베껴 쓰기 관행 만연

특종 베낀 보도가 더욱 주목받기도

인터넷서 심각, 언론계 전체에 피해

기사 표절에 단호한 취재 풍토 필요

그렇다면 표절 문제를 끊임없이 비판해 온 언론의 표절 수준은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한국 언론은 내부에 만연한 표절을 관행으로 여기며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언론에서는 ‘우라카이’라는 일본식 용어로 부르면서 다른 언론사 기사를 베껴 쓰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다. 〈연합뉴스〉 등 통신사 기사를 표현만 일부 바꿔 바이라인(자사 기자 이름 표시)을 붙여 내보내는 것이 대표적인 수법이다. 이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사항인데도 마치 직업적 관행처럼 통용된다. 특히 인터넷 매체에서 이 문제가 심각한데, 2021년 인터넷신문 자율심의 결과 출처 미표시나 표절 사례는 제재 대상의 48.5%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른바 ‘메이저’ 신문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기사 표절이 만연하는 바람에 때로는 취재 경쟁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기도 한다. 어떤 언론사가 힘들게 특종을 하면 다른 회사가 은근슬쩍 기사를 베껴 자사 기사로 둔갑시키는 꼼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1년 10월 신문윤리위원회는 메이저 신문을 포함해 8개 유력지에 주의 조치를 내렸다. 어떤 인터넷 매체의 정치뉴스 관련 특종 기사를 보도하면서 제대로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베꼈다가 적발된 것이다. 해당 신문들은 ‘한 인터넷 매체’ 식으로 출처를 모호하게 처리하거나 출처 표시 없이 보도하기도 했다. 어떤 언론사는 ‘법조계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으로 엉뚱한 출처를 밝히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 언론에서는 실질적으로 특종이 드물다. 단독 보도가 나오자마자 출처도 밝히지 않고 베낀 기사가 넘쳐난 탓에 일부 관계자 외에는 어느 언론사가 특종을 했는지 알기 어렵다.

단순한 사건 보도 영역을 넘어 칼럼에서도 베껴 쓰기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19년 4월 〈중앙일보〉 뉴욕특파원이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을 상당 부분 모방해 칼럼을 썼다가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더구나 이 칼럼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특파원 기사에서도 유사한 표절 사례가 여럿 드러나 이 사건이 일회성 실수가 아님을 입증했다. 그나마 이 사건은 어떤 공학 전공 교수가 사실을 지적하는 바람에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심지어 표절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에서 표절이 발생한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다. 2002년 〈동아일보〉는 ‘페어플레이의 적들(5) 표절’이란 기획기사에서 기고문 형식의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이 기사의 ‘필자’로 적힌 사람이 자신은 기고한 적이 없고 저서 내용을 ‘무단 표절’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문제가 불거졌다.

이처럼 표절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표절에 너그러운 언론 풍토 때문이다. 간혹 문제가 되더라도 기사 삭제 등 최소한의 제재 시늉만 내고 대충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해외 유력 언론에서처럼 편집국장이나 발행인까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등 회사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처한 사례는 없다. 그러다 보니 기자들도 표절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기 어렵게 됐다.

물론 ‘사실 전달에 불과한 시사 보도’는 법적으로 보호받기에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단순한 사실을 더 풍부한 이야기와 해석으로 만들기 위해 노동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기사 역시 지적 창작물로 보호돼야 마땅하다. 표절에 너그러운 풍토는 언론계 전체에 피해로 돌아간다. 정작 현장을 뛰면서 발굴한 ‘특종’과 ‘단독 보도’는 베끼기에 묻혀 버리고, 베낀 기사가 더 주목받는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생기기도 한다. 좋은 기사가 인정받지 못하는 불공정한 환경에서는 기자의 헌신적인 노력도, 공정한 경쟁과 언론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표절 불감증은 기자 개인의 편법에서 시작되지만 이래저래 미치는 폐해가 막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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