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대한민국이 소멸한다

김수진 기자 ksci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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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경제부장

합계출산율 OECD 최하위로
세계 최고 인구 소멸국 등극
혼인 건수 매년 10%씩 줄고
“육아 부담, 경력 단절 우려”
기업 ‘공동 육아’ 문화 힘쓰고
정부, 현금 지원 생색 넘어
출산·육아 보장제 도입해야

4.53, 2.82, 1.57, 1.48, 1.23, 0.81.

롯데 자이언츠 투수 방어율 같기도 하고, 대학생들의 학점 같기도 한 이 숫자들은 10년마다 감소하는 합계출산율이다.

대한민국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1970년 4.53명이었고, 1980년에 2.82명, 1990년 1.57명, 2000년 1.48명, 2010년 1.23명, 2021년 0.81명으로 급격하게 줄었다는 뜻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OECD 국가 평균 1.59명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OECD 국가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에 못 미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합계출산율이 2.1명이 돼야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한다고 하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 소멸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기록됐다.


지난해 전국 출생아 수는 26만 600명으로 1년 전보다 1만 1800명 감소했다. 1970년까지만 해도 출생아는 한 해 100만 명대였으나 2001년 50만 명대, 2002년 40만 명대로 줄었다. 이후 2017년 30만 명대로 내려앉은 뒤 불과 3년 만인 2020년부터 20만 명대로 추락했다.

부산 상황은 더 나쁘다. 지난해 부산에서 태어난 출생아는 1만 4446명으로, 10년 전인 2011년 2만 7759명의 52%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부산 출생아 수는 인천(1만 4947명)보다 적고 인구가 3분의 1 수준인 대전(7414명)의 2배 정도에 불과하다. 부산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3명으로 서울(0.63명)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낮다.

이렇게 대한민국이 소멸할 정도로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뭘까.

비혼 출산을 꺼리는 한국 사회적 특성을 놓고 본다면, 줄어드는 혼인을 그 첫 이유로 꼽을 수 있다.

2021년 21만 4000건이었던 혼인 건수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20만 건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통계청은 추산한다.

2015년까지 30만 건을 넘던 혼인 건수는 2016년 30만 건 아래로 떨어졌다. 2017년 출생아 수가 처음으로 40만 명 아래로 떨어지는 등 혼인 건수와 출생아 수는 매년 10% 가까이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부부는 왜 이토록 출산을 꺼리는 걸까. 이들은 출산·육아와 관련한 경제적 정신적 부담을 호소했고, 출산 여성의 경력 단절을 우려했다. 여론조사 전문 앱 폴라이드가 지난해 2월 전국 성인 남녀 4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출산·양육에서 우려되는 부분(중복응답)으로 ‘출산·육아 비용 부담(71.5%)’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경력단절 우려’(37.7%), ‘출산·육아 자신감 부족’(36.0%)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은 출산 제고 정책으로 ‘육아휴직 제도의 정착 및 확대’(35.3%), ‘경력단절여성 사회복귀 지원’(31.9%),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29.9%) 등을 선호했다. 반면 ‘파격적인 금전 지원’과 ‘출산장려금 인상’ 등은 각각 20.7%와 23.1%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한두 번에 그치는 현금 지원이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출산의 현장에서 일하는 산부인과학회는 올해 초 저출산을 막기 위해 ‘임신·출산 비용 국가 보장제’를 도입하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다시 말해서 임신·출산과 관련한 모든 비용을 국가가 책임지라고 촉구한 것이다. 임신·출산이 개인이 감당할 사안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국가 정책은 다소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올해 보건복지부가 밝힌 저출산 대책을 보면 ‘첫만남이용권’ ‘영아수당’ ‘아동수당’ 지급 등 대부분 현금 지급 형태다. 내년에는 만 0세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에게 월 50만 원을 주는 부모 급여를 신설한다고 한다.

한 여성 잡지에서 조사한 출산 장려 방안에 ‘자유로운 조퇴나 연차 사용’과 ‘퇴근 시간 보장’이라는 답변이 있었다. “육아는 엄마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늦게 퇴근하다 보니 아이를 함께 돌볼 시간이 없다. 일정한 시간에 퇴근을 해야 육아가 가능하다.” 이처럼 출산과 육아는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기업도 출산과 육아하기 좋은 환경과 문화 조성을 책임져야 한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부는 여성부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폐지를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여성부를 폐지한다면, 국가의 존망이 달린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출산부’ 또는 ‘인구유지부’를 신설할 의향은 없는가. 출산과 육아보다 더 중요한 국정 과제가 과연 있는가.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가와 기업이 나서 아이를 안전하게 낳고 걱정 없이 키울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 주길 간청한다. 돈만 주면서 생색내지 말고.


김수진 기자 ksci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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