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3색 性이야기] 성범죄 재판에도 활용되는 성의학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박현준 부산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십여 년 전 일이다. 통영에서 한 할아버지가 온 가족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대단히 심각한 병인가 싶었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사연인 즉, 그 할아버지께서 같은 마을의 지체장애를 않고 있는 10대 중반의 소녀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고, 검찰에서는 피해자인 소녀의 진술에 의거해 할아버지를 용의자로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항변했고, 더욱이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이미 오래전부터 고혈압, 당뇨를 심하게 앓고 있어 성기능이 상실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판사는 첨예하게 상반된 주장에 대해 의학적으로 이 할아버지의 성기능을 평가해 달라고 필자에게 요구했다.

음경 발기를 객관적으로 평가, 입증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골절이라면 엑스레이 검사에서 부러진 뼈가 보일 것이고, 복부에 생긴 종양이라면 CT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발기부전이란 병은 지극히 주관적인 질병이다.

이런 경우에 시행되는 검사가 야간 발기 검사다. 건강한 성인 남성이라면 하룻밤에 3~6회, 1회당 약 10~20분 정도의 수면 중 발기가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척추를 다치거나 전립선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대사증후군과 같은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성기능 장애가 발생하며, 이는 곧 야간발기의 감소로 이어진다. 고환의 기능을 상실해 남성호르몬이 저하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심리적인 요인으로 발기부전을 겪고 있는 환자라면 수면 중에는 발기를 억제시킬 수 있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지 못하기에 실제 성관계시에는 발기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야간발기는 이루어지게 된다.

야간발기를 평가하는 도구로 과거에는 우표 혹은 거즈 검사 등이 활용되었다. 밤에 자기 전에 환자의 음경에 우표를 말아 붙여 놓거나 거즈를 붙여놓고 아침에 우표나 거즈가 떨어져 있는지의 유무로 야간에 발기가 이루어 졌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수면 중의 몸부림으로도 훼손이 가능하고 야간발기의 횟수를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현재는 ‘리지스캔’이라는 의료기를 이용해 측정한다. 리지스캔의 센서를 음경에 부착한 후 잠을 자면 수면 중 음경의 변화를 고스란히 데이터로 저장하여 다음날 아침 컴퓨터로 출력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리지스캔을 미국의 한 회사가 독점 공급하고 있어 가격이 비싸고 고장도 잦다.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운용 인력도 필요해 이 검사를 시행하지 않는 병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다시 돌아와서 그 할아버지의 성기능 평가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는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필자가 시행한 검사가 정확하게 이루어졌고 제출된 성기능 의료 감정기록이 잘 활용돼 억울한 이가 없는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졌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