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타 지자체도 서로 나선 블록체인 도시?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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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경제부 차장

지난달 31일 대구시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묘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2030년까지 2조 2000억 원을 들여 대구 수성알파시티에 국내 ABB(AI·빅데이터·블록체인) 분야의 미래산업을 육성한다는 내용이다. 블록체인 특구 부산으로선 다소 당황스러운 소식이다.

대구가 블록체인 산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훨씬 그 이전부터다. 기자가 만난 블록체인 업계 사람들도 종종 대구 이야기를 했다. 올해 들어 대구시로부터 블록체인 관련 사업 제안이 많았고, 그렇다보니 블록체인 업체들도 자주 대구를 방문하는 모양새다. 본보에 게재된 부산국제블록체인비즈니스센터(BIBC) 추진 기사를 언급하며 “대구에도 이런 거 하나 만들고 싶은데…”라고 업체에 의견을 묻는가 하면, 블록체인 인재 양성에 관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국내 인재뿐 아니라 해외 학생들도 유치해 블록체인 교육을 시키겠다는 구체적인 사업안을 들려주기도 했다.

대구시, 과기부와 최근 업무협약

블록체인·AI 분야 육성에 2조 투입

부산만의 특화된 산업 이제는 먼 말

타 지역 도전 이겨낼 경쟁력 키워야

실제 대구시가 발표한 관련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ABB청년 인재 육성과 창업 및 교육 앵커시설인 소프트웨어스타디움 구축 △차세대 블록체인 기술 특구 조성 △메타버스 융합 기술고도화 지원 사업 등이 포함됐다. 앞서 업체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랑 별반 다르지 않다.

대구시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부산만큼이나, 아니 더 심각하다고 판단하기도 하는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도둑질말고는 뭐든지 하려고 방편을 찾을 수밖에 없을 테다. “미래 먹거리로 찾을 수 있는 첨단 4차 산업들이 겹칠 수 밖에 없질 않나”라고 솔직히 털어놓는 대구시 공무원의 이야기에 뭐라 반박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부기관은 다르다. 지난달 31일 해당 업무협약이 체결된 ‘대구 디지털 혁신 비전 선포식’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은 행사장을 찾은 박윤규 과기부 차관을 “내 후배”라며 소개했다. 이날 박 차관은 “대구시의 ABB 중심 디지털 신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과기부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2019년 정부는 지역별로 특화된 미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7개 지역을 선정해 지역별 규제자유특구를 지정했다. 당시 부산은 블록체인 특구로, 대구는 스마트 웰니스 특구로 지정됐다. 스마트 웰니스(Smart Wellness) 산업이란 최첨단 의료기기, 의료 데이터 활용 등 기술에 관련된 산업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런데 수성의료지구는 언제부터인가 수성알파시티로 개명했다. 그리고 병·의원, 의료산업체 대신 IT기업 유치로 방향을 전환했다.

지역 규제자유특구의 취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혁신산업과 관련된 신기술에 대한 실증(지역특구법)이고, 다른 하나는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의 육성(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다. 결국 정부가 마련한 특구의 취지 중 하나가 지역별 특성에 맞는 산업을 나눠 육성하는 것이라면 과기부 차관의 지난 발언은 관련 법 취지에 미뤄볼 때 적절하지 않다. 정부기관의 주요 인사가 특정 산업 분야 혹은 유사 분야에 대해 특구 아닌 지역에 정부 지원을 약속한다는 것은 자칫 업계에 지역 규제자유특구의 본래 취지와 다른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애써 담담한 척 외면하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타 지자체의 자구책에 입을 대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거니와, 항의를 하려면 과기부를 향한 것이어야 할 텐데 그쪽에 대해선 오히려 눈치만 보기 바쁜 분위기다. 한편으로는 “블록체인 산업 육성은 아무나 하나”라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도 작용한 듯 하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이 말 그대로 근거가 없어 보이기에 다소 걱정스럽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는 당장 더이상 진행할 추가사업도 없어 내년부터 ‘특구사업 없는 특구’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기존에 진행했던 사업 역시 얼마전 한 사업자가 자기네 사업권을 ‘부산시가 인수하라’고 요청할 만큼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사업자들이야 어느 지자체가 더 많은 혜택을 준다면 그쪽으로 갈 뿐이다. 부산시가 타 지자체와 비교해 차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거라곤 ‘특구’ 하나인데, 특구 사업은 그저 그렇고, 타 지자체(대구)가 업체들에 파격적 지원을 제시한다면? 기자라면 부산시만큼 마음이 편하진 않을 것 같다.

조만간 디지털자산거래소 출범을 위한 최종 사업자 공고가 나온다고 하니, 그것이 부산 블록체인 생태계에 타 지자체와 차별화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만들기를 바랄 뿐이다. 그나마도 최종 발표될 거래소의 구조가 단순히 가상자산거래소가 아니라 지역 블록체인 생태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을 때의 이야기이지만….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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