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통치는 고도의 정치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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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 폴리컴 대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천명하며 사내 1만 명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그러나 공채 직원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고, 문 정부의 상징이던 ‘공정’이 훼손돼 청년들이 크게 반발했다. 바로 ‘인국공 사태’다. 탄핵 여파로 견제력을 상실한 야당, 진영화 된 시민사회의 큰 반대 없이 21대 총선은 물론 부동산 정책 등으로 국정 기조가 바뀌던 정권 중반 이후까지 이런 일방적 국정 운영이 지속됐다.

이처럼 초기 행태를 보면 그 정권의 성향과 방향을 읽을 수 있다. 7월 29일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총리는 ‘만 5세 취학’ 정책을 보고했다가 내상만 입고 4일 만에 폐기했다. 국민의 97.9%가 반대하는 정책을 국정 지지율이 처음 30%(한국갤럽 조사) 아래로 떨어지던 때 내놨다는 것은 국정 지지율 하락이 단지 홍보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잇따른 논란

서투른 대응이 지지율 하락 부추겨

원칙에 따른 정책 집행 중요 불구

전략적 정교함도 놓쳐서는 안 돼

하루빨리 국정 전열 재정비 절실

민심 되돌려야 민생 개혁도 가능

대통령실 관계자는 학제 개편 정책에 대통령이 힘을 실었다고 시인했다. 대통령실 수석들도 이 정책이 가져올 후폭풍을 예견하지 못했다. 아무도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려 살펴보지 못하고 ‘정치 초보’ 대통령의 한계, 대통령실의 정책 조율 기능과 정무적 판단의 문제점만 드러내고 말았다.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초기 논란은 어느 정부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실책 이후 서투른 대응은 불신을 증폭시키고 국정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져 국정 수행에 차질을 빚는다. 윤 대통령은 이전 정부처럼 “포퓰리즘 정책을 펴지 않겠다”,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개혁 때문이 아니라 각종 실책과 말실수로 지지율이 하락한 게 문제다. 원칙은 좋지만, 그에 상응하는 전략적 정교함이 뒤따라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새롭게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는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군주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라고 썼다. 적절한 임기응변이 바로 정치다.

군주의 정치적 임기응변은 대통령의 국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익 앞에 국가나 집단이나 다를 게 없다. 이해로 엇갈린 민심을 조율하고 정치적 이상과 엄연한 현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기 위한 고도의 정치행위가 바로 통치다. 단지 열심히 하면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미련한 행위다.

시작부터 집무실 이전 논란으로 새 정부의 국정 기조와 목표가 묻혀버렸다. 소통하겠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 역시 정제되지 않은 발언과 말실수로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되었고, 장관들의 잇따른 실책은 논란을 가중시켰다. 일은 하고 있지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국민이 잘 인지하지 못해 ‘무정부 상태’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이 모든 게 정치를 배제한 정교하지 못한 통치가 원인이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최대의 ‘청와대 정부’를 꾸려 집권 중반 이후까지 국무위원이 아닌 정치를 아는 청와대 비서실이 국정을 주도했다. ‘A4대통령’이라는 조롱까지 받아 가며 대통령 메시지는 철저하게 관리됐고, 정책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정교한 정치에 의한 통치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견제 없는 일방적 독주가 되어 정권의 이념에만 충실했던 게 문제였다. 정치적 통치엔 능숙했으나, 방향이 잘못됐다.

윤석열 정부에 대해선 용산 집무실에 목표와 전략이 없고, 컨트롤 타워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국정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는 정교함과 안정감에서 나온다. 명확한 국정 기조와 목표, 이를 중심으로 구체적 정책이 정치적으로 관리되고 일사불란하게 추진되어야 예측이 가능해진다. 그래야 국민도 정부가 뭘 하는지 알고 신뢰할 수 있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대통령이라 이해할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통치는 고도의 정치행위란 걸 간과하면 안 된다.

이념과 정파를 떠나 정권이 성공해야 나라가 산다. 국정은 단지 열심히 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단순히 홍보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의 말이 논란을 일으키고 정부가 하는 일에 일관성과 맥락이 없다면 국민은 불안해한다. 자잘한 실책이 잦아지면 가랑비에 옷 젖듯 불신도 깊어진다.

다행히 여름휴가 이후 대통령의 말이 신중해졌다. 인적 쇄신 의지도 엿보인다. 시간이 많지 않다. 빨리 전열을 재정비하여 국정 목표를 명확히 하고 국정의 일관성과 정치력 강화를 통해 민심을 되돌려야 개혁도 가능하다. 제대로 통치하려면 제대로 정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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