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한국 정당의 인력난, 지방의회에 해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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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요즘 우리 정치를 보고 있으면 ‘삼국지’나 ‘초한지’ 같은 대서사시를 두세 시간짜리 영화로 줄여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전개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지난해부터 선거 세 번을 내리 이긴 국민의힘은 느닷없이 위기론이 불거지더니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그 비대위가 법원에 의해 제동 걸리자 다시 한번 새로운 비대위를 준비하고 있다.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더불어민주당은 여론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했다가 지방선거에서 연이은 패배를 경험했다. 그런데 전당대회를 치르며 전열을 가다듬더니 이제는 민생과 ‘김건희 특검’을 무기로 정부 여당을 잔뜩 벼르고 있다. 이 모든 사건이 불과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일어났다.

비대위도 꾸리지 못한 여당과 당원의 압도적 지지로 당 대표를 선출하고 체제를 정비한 야당. 지금 여야의 상황은 언뜻 보면 사뭇 상반돼 보인다. 하지만 최근 양당의 이벤트가 전개된 양상을 보면 거기에 내재된 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당장 앞에 선 한두 명을 제외하면, 양쪽 다 변변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력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힘 비대위 사태 내부 비판 없애

더불어민주당 1인 체제 다양성 배제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과 성장 봉쇄

국민보다 유력 정치인에 줄 대는 문화

정당 인재영입 시스템 소멸시효 다함

지방의회의 청년 정치인들 잘 키워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를 바꾸기 위한 소위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정치인들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은 일단 윤핵관 측의 승리로 매듭지어지는 모양새다. 그런데 그 승리는 대단히 부정적인 교훈을 남겼다. 여당 정치인들로 하여금 일말의 비판조차 수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내부적 단결이 국민의 지지를 담보하는 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 여당은 이 전 대표가 물러나고 청년들의 민심이 급격히 나빠지자 그의 빈자리를 정권에 충성하는 젊은 스피커들로 메꾸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청년들의 마음을 되돌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들이 대변하는 건 보편적인 청년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의 권력자들인 이유에서다. 그런 집단에서 어떤 인물이 새로 등장한다고 한들 그가 국민에게 끼치는 소구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재명 의원은 77.77%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최고위원 역시 대부분 친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차지했다. 그런데 이 결과는 역설적으로 민주당이 처하게 될지도 모를 어려움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이재명 대표와 경쟁할 만한 인물이 사실상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민주당은 지난 몇 년간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덩치만 클 뿐 당내 정치 지형은 균질화된 집단이 되었다. 다른 목소리는 강성 지지층의 공격을 받고 배척되었다. 이런 현실은 민주당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더 큰 충격으로 다가갈 공산이 크다.

어느 쪽이든 ‘차세대 리더’로 부를 만한 사람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건 리더와 지지층의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 정당이 채택해 온 인사시스템이 그 소멸시효를 다했다는 걸 반증하기도 한다. 거대 양당은 전통적으로 외부에서 인물을 수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 주었다. 법조계, 언론, 학생운동권, 시민사회계 등이 대표적인 영역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해당 분야에서 인력을 모두 충원하기엔 정치가 너무 전문화되었고 국민의 요구도 더욱 다양해졌다. 그래서 정치권도 틈만 나면 인재 양성을 이야기하기는 한다. 하지만 선거에 임박하면 스토리와 캐릭터에 기댄 인재 영입이 반복된다. 정치 신인들로서도 국민을 대변하고 지역을 위해 봉사하기보다 유력 정치인에 줄을 서는 게 더욱 효율적인 전략이 된다. 자연스레 비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당은 획일화된다. 그 수준도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당 밖에서 인재를 찾는 건 지극히 여의도 중심적인 발상이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이미 전국 지방의회에는 일찍이 청운의 꿈을 품고 정치에 도전하는 청년 정치인들이 있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도 30대 이하 출마자 중 각각 83명(전체의 9.5%), 333명(전체의 11.1%)이 광역의원, 기초의원으로 당선돼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지역에서 유권자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며 정치적 역량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선거철이 되면 정작 당의 정치적 자원은 엉뚱한 인물들에게 돌아간다. 유능한 프로 선수들을 외면하고 아마추어 선수에게 당의 명운을 거는 꼴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풀뿌리 의회부터 역량을 쌓은 이들이 전면에 나서는 체계가 갖추어질 때, 그 정당의 기초도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 권력자의 말보다 민의에 빠르게 반응하는 정당, 인재가 끊임없이 배출되는 정당. 그 가능성은 이미 지방의회가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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