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매 맞는 교권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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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관련된 여러 가지 속담과 고사성어가 전해진다. 첫 번째는 역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이다. 당(唐)나라 시대 승려 도선(道宣)이 쓴 ‘교계율의’에 나오는 이 말은 “스승을 따라 걸어갈 때는 웃거나 떠들면 안 되고,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일곱 자 남짓 떨어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속담이 14세기 일본을 거쳐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로 넘어오면서 거리가 일곱 자에서 석 자로 바뀌었을 뿐, 선생님을 극진히 모시는 문화는 여전했다.

두 번째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다. 조폭 영화 ‘두사부일체’(두목과 스승과 부모는 한 몸과 같다) 제목으로 패러디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조선시대 대학자 율곡 이이 선생이 출처로 알려진 이 말은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한 몸과 같으므로 정성껏 받들어야 하며, 자기 생각대로 스승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행동은 좋지 못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무척 힘든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마저 생길 정도다.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들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최근 교실 붕괴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이런 속담이 더욱 회자하고 있다. 얼마 전 국내 한 중학교 교단에서 수업 중인 선생님 뒤에서 한 학생이 드러누워 스마트폰으로 아래위로 촬영을 하는 듯한 영상이 SNS에 공유되면서 “교권이 무너졌다”는 사회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부산교사노조가 최근 부산지역 교사 1141명을 대상으로 ‘교육활동 침해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 중 97%가 “교권 침해 정도가 예년보다 심해졌다”고 응답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욕설하고 침 뱉는 학생’ ‘급식판 휘두르고 머리채 쥐어뜯는 학생’ ‘흉기를 들고 찾아오는 학부모’ 등 교권 침해 사례가 수시로 일어난다고 한다. 교사들은 조사에서 “정당한 학생 지도가 아동 학대로 몰릴 수도 있어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한다”라고 호소했다. 과거처럼 스승의 권위로만 움직일 순 없지만, 이 정도면 군사부일체란 말을 꺼내기조차 무색하다.

자칫 교권 추락이 선생님들의 사기 저하와 무관심을 부추겨 무사안일주의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선생님조차 존경하지 않으면, 그 학생은 누굴 보면서 존중받는 인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이런 환경에서도 꿋꿋이 교실을 지키는 일선 선생님들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낸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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