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마음을 비우니 임신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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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병원 원장 이상찬

자연임신이 되기 위해서는 배란된 난자와 남편의 정자가 배안에서 만나 수정된 수정란이 자궁 안에 착상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난임 환자는 배란시기에 부부관계 후 다만 임신 결과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난임 전문의도 배란검사 후 부부관계 날짜를 잡아주고 기다리는 것 뿐이다.

이 경우에 바로 임신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임신이 안 되기도 한다. 나팔관이 막혀있거나 무정자증이거나 남편이 원인이라면 시험관아기시술을 시도하여 임신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배란도 되고 나팔관도 이상이 없고 남편 정액검사도 이상이 없는데 임신이 안 되는 경우를 원인모를 난임이라고 한다.

어느 토요일에 임신 9개월의 만삭 산모가 한 손에는 3살 된 아들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떡을 들고 진료실에 들어왔다.

“원장님 둘째는 자연임신으로 되었어요.”

“예?”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이 산모는 38세일 때 인공수정으로도 임신이 되지 않아 마지막으로 시험관아기시술을 해서 어렵게 임신이 되었다. 이후 첫째 아기가 생기면서 임신 스트레스에서 벗어났고 심리적인 안정을 찾게 되어 둘째 아기는 자신도 모르게 자연임신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수정란의 착상과 심리적인 안정과는 상호연관이 있다. ‘임신이 안 되면 어떡하나’하는 쫓기는 마음이 되면 자연임신을 방해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임신할 수 있다’ ‘잘 될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착상과 임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지난 1월 한 난임 여성이 진료실에 오셨다. 이 분은 특별한 이상이 없었고 시험관아기시술 등 많은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중간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는지 입양을 결정하셨다.

“입양을 하려고 하는데 난임 진단서가 필요합니다.”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난임 진단서를 작성해 드렸다. 잊고 있던 차에 이 여성이 9개월 후 생리가 빠졌다며 병원을 찾아 오셨다. 검사해 보니까 임신 2개월째였다. 입양한 아기가 있어 스트레스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심리적인 안정을 찾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자연 임신 되었던 것이다.

자연 임신은 사람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현상의 일부이며, 신의 영역이다. 난임 전문의는 인간의 미약한 힘으로 불손하게 신의 영역에 도전해 최전방에서 싸우는 사람이다. 여기에 시험관아기시술로 수정시킨 수정란을 인큐베이터에서 키워주는 연구원의 후방지원이 없으면 싸움은 백전백패다. 진료 스케줄을 잡고, 주사처방을 설명하며, 환자의 마음을 다스려주는 간호사와 행정 직원의 후방 지원이 또한 중요하다.

이 모든 협동작전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임신이라는 신의 영역에 희망을 갖고 들어갈 수 있다. 난임 부부와 난임 전문의가 상호신뢰하고 마음을 비우면 그 비운 공간에서 임신의 싹을 틔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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