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찰스 3세 호칭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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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국왕이 승하하면 여러 장례 절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묘호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묘호는 승하한 왕의 치세를 한마디로 평가하는 측면도 있어서 의정부·육조·춘추관 등 2품 이상의 신하들이 참여해 사후 7일 전후로 결정했다고 한다. 두 글자인 묘호는 그렇게 한번 정해지면 어떤 이름이든 그 이름으로 영원히 후세에 전해진다. 왕의 입장에서 본다면 후세 사람들이 내리는 ‘통치 평가서’라고 할 만하다. 익숙한 태조·태종·세종 등이 모두 묘호다.

시호도 승하한 뒤 결정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시호는 원칙적으로 그 사람에게 붙는 명칭으로 모든 업적을 표현하다 보니, 여러 글자로 구성돼 길다. 반면 묘호는 종묘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호칭으로, 지금은 군주의 대표적인 호칭이 됐다. 춘추필법에 입각한 동양적인 역사관의 소산으로 엄격한 평가와 경계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에 반해 서양에서는 국왕의 호칭이 대체로 개인 선택 사항으로 여겨진다. 며칠 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즉위한 찰스 왕세자는 공식적으로 곧바로 ‘찰스 3세’로 불렸다. 처음 호사가들은 왕의 호칭을 두고 ‘찰스 3세’가 아닌 ‘조지 7세’의 가능성도 있다고 입방아를 찧었다.

결론적으로 찰스 3세가 선택됐는데, 이는 즉위하는 왕의 개인 선택이었다고 한다. 찰스 왕세자는 ‘찰스 필립 아서 조지 마운트배튼-윈저’라는 본명 가운데 ‘찰스, 필립, 아서, 조지’ 네 가지 중 하나를 국왕 호칭으로 택할 수 있었다. 결국 찰스를 선택해 찰스 1, 2세에 이어 3세가 됐다. 조지를 택했더라면 외할아버지 조지 6세에 이어 조지 7세가 됐을 것이다. 모후인 엘리자베스 2세 역시 본인 이름 중에서 호칭을 선택해 엘리자베스 1세에 이어 2세로 불렸다.

찰스 3세의 외할아버지인 조지 6세는 평소 첫 번째 이름인 앨버트 왕자로 불렸지만, 중간 이름인 조지를 호칭으로 선택한 경우다. 다음 영국 국왕으로 예상되는 윌리엄 왕세자의 경우, 만일 이름 그대로 호칭을 쓴다면 앞선 4명의 왕에 이어 윌리엄 5세가 된다.

일반인과 달리 국왕의 호칭은 그 나라에서 한 시대를 특정하는 용도도 있는 만큼 무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 역사적 평가와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대 속에 즉위한 찰스 3세가 국왕 호칭에 담긴 의미를 잘 헤아려 모후 못지않은 족적을 남기기를 바라 본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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