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허대만법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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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향년 53세를 일기로 작고한 허대만 전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은 부산과 인연이 적지 않다. 경실련에서 활동하던 시절 지금 부산을 기반으로 정치·사회 활동을 이어 가는 여러 인물들과 교분을 쌓았다. 여하튼,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온 그는 서울에서 정계 입문이 가능했음에도 고향인 포항으로 갔다. 우리 정치판의 고질인 지역주의 벽을 깨부수겠다는 시도였다.

1995년 전국 최연소(26세)로 포항 시의원에 당선됐지만, 이후 20여 년 동안 6차례 국회의원과 포항시장 선거에서 모두 낙선했다. 포항이 어떤 곳인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보수 성향이 유달리 강한 지역이다. 그는 거기서 줄곧 민주당 등 진보 계열로 출마했다. 정치인으로서 실패한 인생이었다고 볼 수 있을 법하다.

그런데 요즘 정치권에서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강하다. ‘허대만법’을 만들자는 게 그렇다. 허대만법은 김두관 의원 등이 지난 1일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말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게 골자다. 국회 의석을 6개 권역별 인구비례에 따라 나눈 뒤,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지금처럼 전국을 하나의 권역으로 보고 비례의석을 일괄 배분하면 지역 안배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데, 권역별로 따로 배분하면 해당 권역에서 여러 정당의 의석 확보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요컨대 ‘경상도는 국민의힘, 전라도는 민주당’이라는 식으로 고착된 지역 구도를 깨자는 것이다.

사실 이 법은 지역주의 정치의 폐해를 보다 못한 중앙선관위가 2015년 국회에 제안했던 것이다. 이후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수차례 시도됐지만, 여야가 유불리를 따지는 과정에서 매번 좌초됐다. 21대 총선을 앞둔 2019년 민주당은 바른미래당 등과 손잡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정개특위에서 통과시켰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대했고, 민주당도 의석수 감소를 우려한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철회했다.

이번 허대만법은 온전히 법으로 시행될 수 있을까. 확실치 않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군소 정당의 비례의석 확보가 용이해져 손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거대 정당 의원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지역민에게 맹목적인 순종과 증오를 요구하는 지역주의 정치의 폐해는 지금껏 수없이 봐 왔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허대만법, 반드시 성공하길 기원한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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