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선물과 삶의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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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바그너 원작 ‘니벨룽의 반지’ 공연. 부산일보DB 바그너 원작 ‘니벨룽의 반지’ 공연. 부산일보DB

코로나의 나날 속에서 추석 성묘를 2년이나 걸렀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었더니 문득 꿈결에 찾아와 보고 싶다 하신다. 서둘러 나서는 길, 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있다. 일산에 사는 팔순의 이선생님께서 사과를 보내셨다. 거꾸로 된 명절 인사다. 감사의 뜻을 전하니 이내 답을 주신다. 더 좋은 것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니벨룽의 반지’는 바그너의 음악극이다.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 4편 연작이다. 라인강의 황금으로 만든 반지는 절대권력과 재물을 가져다준다. 알베리히는 반지를 빼앗기고는 영원한 저주를 불어넣었다. 반지를 획득한 자들은 모두 파멸로 치닫는다. 황금반지는 영화의 상징이자 몰락의 시작이다. 마르셀 모스는 이 반지로 ‘불길한 증여’를 논했다. 선물은 주고, 받고, 갚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선물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거나 유대를 굳건하게 한다. 선물이 상품과 다른 까닭이다. 답례를 전제하거나 과도한 선물은 관계를 깨뜨리기도 한다. 대가의 크기나 시기를 특정하는 교환은 호혜성을 파괴한다. 독일어 기프트(Gift)는 독(poison)을 뜻한다.

이 선생님과는 꽤 오랜 인연이다. 부산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1960년대 초반 부산시향 첼리스트로 일했다. 불과 2년 정도였으나 생의 옹달샘과 같은 세월이라 기억한다. 음악과 무관한 삶을 살다 만년에 옛 일터를 찾은 선생님을 반갑게 맞아준 일로 사무실에 화과자를 보내셨다. 오롯이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만 돌려보내고 말았다. 화과자가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이었음을 그때는 왜 알지 못했을까. 이제는 부산시향을 떠났는데도 서로의 존재 덕분에 각자 다른 시기 시향에서 보낸 생의 한때를 잊지 않는다.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 묵은 기억에 단풍처럼 물들었다. 아버지 친구 서 씨 아저씨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 일이다. 아니 아저씨의 선물을 기다렸다. 누우면 눈을 감는 인형, 바나나, 파인애플, 초콜릿. 빠듯한 살림에 선뜻 사주기 어려웠을 것들이다. 화학교사였던 선친의 지도를 받았기에 수업료 대신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딸에게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선물한 셈이다. 선물은 등가물의 교환이 아니다. 쿨라(Kula)는 장신구 2종을 증물로 교환하는 파푸아뉴기니의 풍속이다. 붉은 조개 목걸이는 북쪽, 흰 조개 팔찌는 남쪽에서 출발해 쿨라 링(Ring)에 속한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다. 오래 소유하지 않고 다음 상대에게 넘겨야 하므로 카누를 타고 멀고도 거친 바다를 건너기도 한다. 쿨라로 맺은 관계는 환대와 보호를 평생 의무로 삼는다는 약속이다. 선물의 순환이 동심원을 그리며 삶의 순환으로 이어지는 공동체의 미래를 꿈결처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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