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라가야의 미학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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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은 고대 아라가야의 땅이었다. 아라가야는 전기와 후기 가야 연맹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561년 신라에 복속된다. 경남과 부산은 물론 전남과 전북의 상당지역은 가야의 땅이었다. 아라가야뿐만 아니라 김해 금관가야, 고성 소가야, 창녕 비화가야, 합천 다라가야, 고령 대가야, 성주 성산가야 등 가야 연맹 고대 국가들은 탁월한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와 경쟁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가야 역사 복원은 현재까지도 미진하다. 가야사를 본격 연구한 기간도 짧다. 당시의 역사 기록도 드물다. 하지만 ‘잊힌 제국’ 가야의 각 나라들은 자신들이 활동했던 지역에 수많은 고분 유적을 남겼다. 고분군은 그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알려주는 보물창고다. 고분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과 매장 인골 등은 가야 제국의 실체를 전해준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도 1000여 기 이상의 아라가야 고분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말이산 고분군에서는 여러 가지 모양을 본뜬 도기(도질토기)를 비롯해 아라가야 고유 양식의 다양한 토기들이 다수 출토됐다. 아라가야의 제작 기술은 독보적이었다. 진흙으로 빚은 성형물을 가마에서 구운 아라가야 도기는 동아시아를 매료시킨 명품 교역품이었다. 곡선미 등 빼어난 조형 미학과 초고온 소성법 등 당시 첨단 기술이 모두 응집된 아라가야 도기는 현대의 반도체 또는 전기차와 같은 제품이었던 셈이다.

특히 2019년 발굴 조사된 말이산 고분군 45호분에서는 5세기에 제작된 집 모양 도기 2점, 사슴 모양 뿔잔 1점, 배모양 도기 1점, 등잔 모양 도기 1점 등 모두 5점의 상형도기가 일괄 출토돼 큰 관심을 모았다. 최근 문화재청은 이 도기들을 보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집 모양 도기와 배 모양 도기의 경우, 실제 당시에 존재했던 창고와 배를 그대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가옥구조와 선박 등에 대한 시설물을 복원하고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슴 모양 뿔잔과 등잔 모양 도기는 유물이 지닌 조형예술의 특성이 독특하고, 아라가야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불꽃모양 투창(透窓)이 표현되는 등 독창적인 생각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국내 7곳의 가야 고분군들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도 유네스코에 신청한 상태다.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가야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연구를 기대한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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