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설상가상의 지역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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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정부 정책 자본 효율성만 강조
반도체 산업 수도권 대학 양성
지방대학 정원 축소·인재 유출

수도권 첨단화 비수도권 뒷받침
지방, 기술 사다리 아래 공간화
지역회생 그랜드 디자인 나와야

나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서울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선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다채로운 화원으로 보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삼천리 화려 강산이고 방방곡곡이 아름다운 나라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수도권 집중이 심화하고 지방의 쇠퇴와 소멸이 예견되는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수도권이라는 말은 당연하고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용어가 되었다. 자본과 권력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일극 중심 체제가 고착되는 느낌이다. 지역분권이나 균형발전이니 하는 말들이 진정성을 상실하고 길가에 구르는 돌처럼 추락하고 있다. 과연 지방소멸, 지방 도시 살생부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우리 사회를 온통 구심력으로 쏠리게 하였을까?

기업이나 시장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주체인 국가도 효율성을 앞세울 수 있다. 효율성은 비용에 대비한 효과가 최대인 상태를 추구한다. 국가가 이를 앞세우면 어떻게 될까? 하나의 중심 체계를 지향하지 않을까? 가령 첨단 산업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가 많고 대규모 국제 공항이 있는 지역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최근 정부의 ‘디지털 인재 양성 종합 방안’을 보면 기업의 가치 추구와 정부의 정책이 굉장히 일치하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수도권에 입지한 반도체 등의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수도권의 대학이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반도체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에서 핵심 영역이다. 미국이 대만과 일본과 한국을 엮어 반도체의 지정학적 가치를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체제의 중심부에 이끌리면서 일국적 차원에서 그 중심에 첨단 산업을 집적하려 한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4차 산업 혁명이 가져올 파장은 이미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 공학, 소프트웨어, 자동화 등이 노동 현실을 변화시키고 일자리를 파괴하는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수도권에 첨단 산업이 모두 모인다면 여타의 지역은 종속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다시 말해서 수도권은 첨단화되고 비수도권은 전통적인 제조업을 뒷받침하는 형국이다. 그야말로 지방은 기술 사다리의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되고 만다. 지방 대학 또한 마찬가지다. 우수한 인력을 수도권에 다 빼앗기고 몰락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사태는 국가의 장래를 매우 위태롭게 한다. 불을 본 듯 뻔한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그동안 해 온 공공기관의 이전과 지방보조금 지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첨단 산업의 지역화를 도모하고 그에 상응하는 지역 대학의 육성이 요긴하다. 수도권 공항에 대응하는 남부권 공항도 반드시 건설되어야 한다. 국가의 목표는 모든 지역의 국민을 다 잘 살게 하는 데 있다. 그렇기에 교육과 문화와 복지에 투입하는 비용을 효과의 관점에서 저울질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보여 주는 정책은 자본의 효율성을 앞세우고 있다는 인상이 크다.

정부가 효율성을 앞세운 정책 가운데 하나는 지역화폐 예산의 축소와 폐지이다. 수도권에 비할 때 열악한 처지에 있는 지방민과 지방의 소상공인을 돕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비용 대비 효과가 적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다음으로 각 지역에서 개최되는 문화 활동 예산의 삭감이다. 문화는 효율성의 영역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향유하고 삶의 활력으로 고양하는 매개 과정이다. 결과만 생각하는 데서 우려할 만한 지역 문화 지원 예산의 삭감이 나타나고 있다. 또 하나는 대학 적정 규모화 지원금 정책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서 정원을 감축하는 대학에 지원하는 방식인데 이는 그동안 지속되어 왔다. 이미 앞서 말한 수도권 첨단학과 정원 늘리기와 상충하기도 하지만 정원 감축의 대상이 주로 비수도권 대학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수도권 대학은 정원을 늘리는 한편 우수한 지방 인력을 흡수하게 되었다면, 지방 대학은 정원을 줄이면서 우수한 인력을 놓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

현금의 지방은 그야말로 설상가상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국가가 특별한 전환을 선택해야만 할 시점이다. 어쩌면 조금씩 온도가 올라가는 냄비 속에 든 개구리같이 도래한 파국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도권 집중이 아니라 수도권 해체와 분산, 지방소멸이 아니라 지방회생이 주요한 방향이 되고 실행되어야 하겠다. 필요하다면 상위 대학을 지역으로 재배치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지역의 대학을 특화하여 첨단화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대학은 이미 수월성이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지역을 살리는 혁명적인 그랜드 디자인이 요긴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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