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스토킹 살인, 국가가 재발 막을 장치 마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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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시스템·정부 공범” 목소리 새겨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 없도록 해야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20일 한 시민이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20일 한 시민이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저녁 서울 지하철 신당역에서 일어난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사법부와 국가가 공범”이라는 사회적 공분의 목소리가 거세다. 범죄를 막기는커녕 참사를 키운 사법 시스템의 안이한 관행과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규탄하는 목소리다. 신당역 피해자를 추모하는 전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부산에서도 20일 추모제가 열려 여성 노동자 일터의 안전을 촉구하는 목청이 분출했다. 여야 정치권도 20일 국회에서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며 일제히 사법 당국과 정부를 질타했다. 여러 차례 구원의 손길을 내민 피해자의 몸부림에도 피해자 신변 보호와 가해자 구금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말이 필요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저 비극 앞에서 누구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 사회의 뼈저린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스토킹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가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그 무엇보다 충격으로 다가온다. 피해자는 1년여 전 가해자를 경찰에 처음으로 고소했지만 당시 영장은 기각됐다. 두 번째 고소 때 경찰은 아예 영장조차 청구하지 않았다. 결국 재판은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됐고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가해자는 범행 장소에 숨어 있다가 피해자가 순찰 중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자 뒤따라가 흉기를 휘둘렀다고 한다. 여성 역무원이 직장 동료에게 수년간 스토킹 범죄에 노출된 것도 모자라 재판 도중 보복 살해를 당할 때까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법조계 안팎의 여러 제안들처럼 스토킹 범죄를 막을 보완책이 시급하다. 현행 ‘스토킹 처벌법’의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있는 범죄) 규정은 삭제가 필요한 사안이다. 관련 개정안이 참극 발생 이후에야 발의됐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처벌 강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피해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에 크게 공감한다. 영장심사 단계에서 무죄추정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건부 석방제’라든지 스토킹 피해자가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신청이 가능한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가 거론되고 있는데, 그 도입을 적극 고려할 만하다. 검찰과 경찰도 모처럼 스토킹 범죄를 막기 위해 협의체 구축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스토킹 살인은 올해 들어서도 전국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때마다 대책 요구가 나오지만 어이없는 참극은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중이다. 사람 목숨까지 잃는 극단적 상황이 벌어져야 잠시 관심을 두고 땜질 대책을 세우곤 했으나 그렇게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국가적 차원의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제도의 허점을 샅샅이 찾아서 보완하고 일선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대처로 이어져야 비극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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