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도 벤츠 최고급 사양 모델서 시동 꺼짐 현상…'한국형 레몬법' 유명무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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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2억 7000만 원에 산 벤츠
수영만 주행 중 시동 꺼져 ‘아찔’
소비자가 직접 하자 증명 책임
‘한국형 레몬법’ 유명무실 지적

최근 주행 중에 시동 꺼짐 현상이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최고급 사양 ‘마이바흐 S580’ 내부. 독자 제공 최근 주행 중에 시동 꺼짐 현상이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최고급 사양 ‘마이바흐 S580’ 내부. 독자 제공

부산에서 최고급 외제 차가 주행 중에 갑자기 시동이 꺼져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차주는 리콜을 요구하지만 제조사 측은 리콜 대신 부품 교체만 해주겠다는 입장이다. 새 차를 산 뒤 같은 고장이 반복되면 교환이나 환불을 받을 수 있는 ‘한국형 레몬법’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차종은 전국에서 시동 꺼짐 현상 등이 잇따라 국토교통부도 조사에 착수했다.

22일 메르세데스-벤츠 차주 A 씨에 따르면 A 씨는 지난 6일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 요트경기장 인근 도로에서 자신의 차량을 몰고 가다 갑자기 시동이 꺼지는 일을 겪었다. 그가 몰던 차는 올해 초 2억 7000만 원 대로 구매한 벤츠 최고급 사양 모델 ‘마이바흐 S580’이다. 시동이 꺼질 당시 차량은 시속 20km 정도의 저속으로 주행하고 있어 별다른 사고가 나진 않았다.

서비스센터 측은 차량 부품 문제라며 부품 교체를 제안했지만, A 씨는 리콜을 요구하고 있다. A 씨는 "지난달부터 액셀을 밟아도 차가 앞으로 잘 나가지 않는 등 차에 이상을 느꼈는데, 고가 외제 차를 안전을 위협 받으면서 타고 싶지 않고 부품을 교체한다고 해도 솔직히 불안하다”면서 “결국 큰 사고가 나야 리콜을 해줄 셈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 씨가 시동 꺼짐 현상을 겪은 차량은 지난해 출시된 신형 모델이다. 외제 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해당 차종의 시동 꺼짐이 빈번하다는 게시글이 잇따른다. 지난해부터 같은 차종에서 시동 꺼짐 현상이 잇따르자 국토교통부도 조사에 착수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시동 꺼짐 현상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이라면서 “앞서 발생한 비슷한 사례들도 고객과 원만한 합의를 거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차에 결함이 있으면 교환·환불해 주는 ‘한국형 레몬법'이 도입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형 레몬법법은 ‘달콤한 레몬을 구매했는데 시큼한 레몬일 경우 환불돼야 한다’는 미국 자동차보상법을 본떠 2019년 자동차관리법 제47조 2항을 개정하면서 도입됐다. 신차 구매 후 중대한 하자가 2회 발생하거나 일반 하자가 3회 발생해 수리한 뒤 또다시 하자가 생기면 중재를 거쳐 교환·환불이 가능하다. 교체·환불 여부는 법학·자동차·소비자보호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안전·하자 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다.

22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레몬법 시행부터 올해 7월까지 3년 7개월 동안 총 1725건의 중재 신청이 접수됐다. 그러나 심사위원회의 중재 판정에 따라 교환과 환불이 이루어진 경우는 각각 5건과 3건에 불과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징벌적손해배상제가 없어 제조사들이 차량 결함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면서 “또 미국은 문제가 제기되면 공공기관에서 조사에 착수하는 등 강하게 제조사에 책임을 묻는데, 우리나라는 소비자가 직접 하자를 증명해야 해 '한국형 레몬법'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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