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중국의 한국 역사·문화 침탈에 대한 고언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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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고구려·발해 후손이 금·청 세웠다면
중국의 강한 반발과 분노 명약관화
한국 고대사 부정 ‘동북공정’은 지속
이웃 국가 뿌리마저 찬탈하는 행위
역지사지 자세로 역사 왜곡 멈춰야
허구의 중국사 배울 미래 세대 불행

지난 7월 26일부터 한·중·일 국립박물관 공동 기획으로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개막했지만, 중국이 고구려·발해를 고의로 삭제한 한국 고대사 연표를 게시해 물의를 빚은 ‘한·중·일 고대 청동기’ 전시회. 연합뉴스 지난 7월 26일부터 한·중·일 국립박물관 공동 기획으로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개막했지만, 중국이 고구려·발해를 고의로 삭제한 한국 고대사 연표를 게시해 물의를 빚은 ‘한·중·일 고대 청동기’ 전시회. 연합뉴스

#황하(黃河) 중류 지역을 무대로 한 중국인(한(漢)족)의 첫 왕조는 하(夏)·은(殷)·주(周)다. 가장 앞선 신화시대의 하나라는 비슷하거나 더 오래된 시기에 황하 하류를 포함해 현재의 중국 북부와 만주 지역을 차지한 우리나라 고조선의 제후 부족국이었다. 하·은·주를 다스린 계층은 나중에 중국인들이 동이(東夷)족이라고 부른 우리 한(韓)민족의 선조들이다. 우리 조상들이 세운 환국(桓國)과 배달국, 고조선은 중국 상고시대부터 대륙을 지배하며 중국 문명에 영향을 미쳤다. 부여 출신인 고구려 시조 주몽의 셋째 아들인 온조는 지금의 중국 허베이(河北)성에 있었던 위례성에서 백제를 건국해 영역을 넓혔다.


#만주 땅에서 일어나 중국 역사를 장식한 금(金)과 청(淸)은 한국 고대사를 빛낸 고구려·발해의 유민들이 말갈족 후예들과 함께 만든 국가다. 고구려를 구성한 두 축인 한민족과 말갈족은 나라가 망하자 발해를 건국했다. 상당수 발해인은 국운이 기울 때 한반도로 이주하지 않고 고토에 남아 대를 이어 갔다. 그 자손들은 같이 어울려 살던 말갈족의 후신인 여진족과 뜻을 모아 금나라를 세운다. 금은 중국 북송(北宋)을 정벌한 뒤 도읍을 연경(베이징)으로 옮겨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에도 장구한 세월 동안 만주에 거주한 고구려·발해 유민의 후손들은 여진족 각 부족이 만주족으로 통합해 세력을 키우자 이들과 합세해 후금(後金)을 개국했다.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명(明)나라를 무너뜨려 중국 전체를 지배했다. 한반도 대신 만주 잔류의 길을 택한 또 다른 우리 겨레의 자랑스러운 발자취다.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이야기 가운데 전자는 1911년에 출간된 것으로 알려진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내용과 민족 사관을 가진 재야 학자들의 학설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고증하기 어렵고 과장되거나 왜곡된 사실이 많다는 이유로 정통 사학계와 논쟁을 빚어 온 사안이다. 후자는 동북아 강대국으로 군림한 고구려와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린 발해, 만주를 터전으로 해 중국 본토까지 진출한 금·청나라 정사를 바탕으로 꾸며 본 가상 역사다. 기개가 대단했던 고구려·발해인의 후손들이 옛 북방 영토에 눌러앉아 살면서 실제 겪었을지도 모를 삶의 궤적을 상상해 봤다.

만일 이러한 두 얘기를 한국 정부가 역사적으로 인정한다면, 중국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 중국 정부의 강한 반발은 물론 전체 중국인의 공분을 살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남의 역사를 날조하고 침탈하는 처사라며 맹비난을 퍼부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은 극에 달하고 한·중 관계도 극도로 악화되지 싶다. 중국의 경제 제재가 이어지는 등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가운데 양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사태가 장기화할 수도 있겠다. 둘 중 어느 하나만 한국의 공식 인정이 이뤄지더라도 중국은 강력한 대처를 경고하며 가만있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는 공상에 불과하지만, 중국은 우리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 2002년부터 과거 만주 일대에서 발생한 모든 일을 중국사로 일방 편입시킨 국책사업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역사관이 도를 넘은 탓이다. 고구려·발해사를 고대 중국 지방정부의 역사라고 외치는 중국의 한국사 왜곡은 거슬러 올라가 고조선·부여도 지방정부라며 억지 주장을 펼친다. 중국은 7월 26일부터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에 고구려·발해를 고의로 지운 한국 고대사 연표를 버젓이 전시해 우리 측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중국 민관은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탄생한 김치와 한복도 자기네 것인 양 공공연히 우기고 있다. 이웃나라 사람들의 뿌리를 부정하고 민족 정체성을 뒤흔드는 역사 찬탈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인들 말처럼 한국 고유문화 다수가 중국 전통문화에서 비롯됐다면, 그것은 중국 문화가 상고시대에 황하 이북 지역에서 발흥해 유구한 역사를 이어 온 한민족의 영향을 받은 방계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실제로 요하(遼河)를 중심으로 동이족이 꽃피운 요하문명(또는 홍산(紅山)문화)이 2000~4000년 뒤처진 황하문명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유적이 중국 북동부에서 속속 발굴됐다. 중국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한국사 침탈 행보를 멈춰야 한다. 올 한·중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양국이 우호를 증진하며 동반 발전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역사는 치욕이든 자랑거리든 있는 그대로 새기고 알려야 마땅하다. 후대가 교훈 삼아 밝은 새 역사를 써 나가야 해서다. 동서고금의 진리는 형체일 뿐인 국가는 없어질 수 있어도 정신인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려 준다. 중국이 앞으로도 태도를 바꾸지 않고 허구로 점철된 역사를 만들 경우 중국의 미래 세대는 가짜에 오염된 중국사를 배우며 착각에 빠져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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