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리원전 핵폐기장화, 지자체는 '강 건너 불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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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군 등 실제 내용조차 파악 못해
주민 안전 위해 지자체 적극 나서야

탈핵부산시민연대는 4일 오전 부산시청 앞에서 고리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진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고리2호기 수명연장 중단을 촉구했다. 강선배 기자 ksun@ 탈핵부산시민연대는 4일 오전 부산시청 앞에서 고리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진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고리2호기 수명연장 중단을 촉구했다. 강선배 기자 ksun@

정부가 부산 고리 핵발전소 지상에 고준위 핵폐기물 임시 저장시설 설치를 강행하고 있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부산 고리원전 부지 안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의 지상 저장시설을 2030년까지 건립해 고리 2·3·4호기와 신고리 1·2호기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임시로 보관하겠다고 한다. 국민의힘 김영식, 이인선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 등도 ‘고준위 방폐물 관련 특별법’을 각각 발의했다. 문제는 사용후 핵연료 영구 처분장 확보 시점조차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구 처분장은 올해 당장 부지 선정에 착수해도 2060년에야 운영이 가능해 임시 저장시설이 영구 폐기장으로 전락할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고리 원전에는 현재도 사용후 핵연료 8000여 다발이 저장돼 있다. 고리 노후 원전까지 수명 연장되면 추가로 발생하는 폐연료봉 1000다발도 지상에 적치된다. 핀란드의 경우 지하 100층 규모의 영구 핵폐기장을 설치한 뒤 2018년부터 매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비교하면 고준위 핵폐기물을 고리원전 지상에 임시 저장할 경우 사고 위험성은 상상조차 힘든 실정이다. 정부의 모든 정책이 주민 동의와 공론화 등 아무런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 원전 인근에서 40여 년 희생을 감수하면서, 핵폐기물 처분 대책을 촉구했던 부산·울산 시민은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격으로 황당할 따름이다.

더 큰 문제는 시민의 생명권을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부산시와 울산시, 기장군은 이런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다는 점이다. 탈핵부산시민연대만 4일 기자회견을 열고 “핵발전소 안 건식 저장시설 설치를 즉각 백지화하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시민의 생명권을 시민단체에만 의존해야 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지역의 존망이 걸린 핵폐기물 임시 적치에 대해 부산시와 기장군은 “주민 안전 보장, 주민 소통” 등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다. 원전 반경 5km 이내에 위치한 기장군은 “공식적으로 대응하기 난감한 상황”이라면서 구체적인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사태의 심각성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인지, 혹은 무능한 탓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쯤 되면 지역 주민은 해당 지자체가 고리원전을 영구 핵폐기장화 하려는 정부와 한수원의 일방통행을 묵인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자체는 이런 무책임한 태도에서 탈피해 “핵폐기물 대책을 원점에서 다시 세우라”고 정부와 한수원, 국회에 촉구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지역의 존망과 주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행동을 거듭 촉구한다. 정부와 한수원은 당연히 부산·울산을 핵폐기물 적치장으로 만들겠다는 임시방편적인 발상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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