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고리원전 내 방폐물 저장 위한 법적 근거”… 주민 반발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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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 영구 핵폐기장 되나]
1. 지역 고통 가중 특별법

고준위 방폐물 10년간 수조 냉각
부산 6개 원전 6901다발 저장 중
2031년 사용후핵연료 저장 포화
추가 수명연장 땐 1000 다발 증가
저장·영구처분 가동 시점 제시 안 된
국회 3개 특별법 사실상 역할 못 해

탈핵부산시민연대가 4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리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시설 설치 추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탈핵부산시민연대가 4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리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시설 설치 추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여야 막론하고 원전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는 특별법안들만 발의됐습니다.”

고리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 최선수 센터장은 지난해부터 발의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안 3건을 두고 이렇게 개탄했다. 이들 법안이 원전부지 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저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원전 폐기물 중 가장 위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사용후핵연료를 지칭한다. 사용후핵연료는 방사선 준위가 높고 고열을 계속 발산해 원자로에서 바로 꺼낸 뒤 10m 깊이의 수조에서 10년가량 냉각시켜야 한다. 현재 국내의 모든 경수로에서 사용후핵연료가 이렇게 관리되고 있다. 이런 위험천만한 물질을 지상으로 끄집어내는 것도 모자라 노후원전 수명 연장에 따른 추가 발생분도 부산·울산·경남 등 원전 밀집 지역이 그대로 떠안도록 명시한 특별법안을 두고 ‘1+1(수명연장+사용후핵연료 추가분)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1000다발’ 오롯이 부산에

경수로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한 다발은 길이가 무려 4m에 너비 20㎝, 무게는 450㎏에 이른다. 최근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안대로 노후원전의 수명 연장까지 고려해 원전부지 내 사용후핵연료를 지상 저장할 수 있다면 부산의 고리원전(고리 2~4호기·신고리 1~2호기)에는 사용후핵연료 몇 다발을 더 저장할 수 있을까. 원전부지 내 저장시설이 설치·운영된다 하더라도 정확히 사용후핵연료가 얼마나 쌓이게 될지는 현재까지 불명확하다. 다만 최근 5년간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그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해당 특별법안대로 내년 4월에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고리 2호기를 비롯해 고리 3호기(2024년 9월 만료), 고리 4호기(2025년 8월 만료) 등 노후원전 3기를 10년 더 계속운전한다고 가정해 보자. 고리 2~4호기의 최근 5년간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은 모두 543다발이다. 지난 5년 수준으로 이들 원자로를 가동한다면 수명연장 기간 동안 사용후핵연료 1000여 다발이 추가 발생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에 따르면 올해 6월 30일 기준 고리원전 저장수조에 담긴 사용후핵연료는 모두 6901다발이다. 저장률 85.9%를 기록 중이며, 최대 8038다발까지 수조에 담가 놓을 수 있다. 한수원은 고리원전의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을 2031년으로 전망한다.

원전부지 내 저장수조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지상으로 꺼내 건식으로 저장하는 양이 많을수록 그 위험성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사용후핵연료는 ‘세슘’과 ‘스트론튬’, ‘플루토늄’과 ‘마이너액티나이드’ 등의 핵종을 지니고 있어 중·저준위 폐기물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열과 강한 방사선을 배출한다. 이 때문에 폐연료봉을 붕산이 녹아 있는 물 속에 10년간 담가 놓아야 하며, 사고 우려 때문에 이동도 엄격히 제한된다. 현재까지 발전소 사이 소량의 폐연료봉 이동만 있었을 뿐 대규모 이동은 이뤄진 적이 없다.

■원전부지 내 저장… 언제까지 떠안나

현재까지 국회에 발의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안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원전부지 내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지역주민들과 탈핵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게다가 이들 법안 중 일부는 원전부지의 한시적 저장시설을 언제까지 운영할지가 빠져 있다.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찾지 못한다면 원전 밀집 지역이 영구 핵폐기장으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사용후핵연료 관련 특별법안 중 지난해 처음으로 발의된 더불어민주당의 김성환 의원 법안을 보면 제32조 8항에 “부지내저장시설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는 관리시설이 완공된 후 지체 없이 관리시설로 이전해야 한다”고만 언급돼 있을 뿐 구체적인 시점이 없다.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이 제출한 특별법안도 마찬가지로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가동 시점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이 의원의 법안은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조속히 확보하도록 국가에 책무를 부여한다”며 제33조 8항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중간저장시설이 준공된 후 지체 없이 그 시설로 이전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탈핵부산시민연대 김현욱 집행위원은 “‘조속히 마련’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이 또한 기한이 명확하지 않아 민주당 법안과 무슨 차이점이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아무리 짧게 저장한다 하더라도 지역에 피해가 갈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배려는 전무하다. 고리 2호기 등 노후원전을 계속 운전하기 위해 핵폐기물을 임시방편으로 처리하려는 술수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반면 특별법안 중에서도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유일하게 원전부지 내 사용후핵연료의 저장 시한을 2043년까지로 정했다. 해당 법안 제15조 3항에서 “부지내저장시설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는 2043년부터 중간저장시설로 이전하며, 2050년부터는 부지내저장시설 및 중간저장시설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를 처분시설로 이전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늦어도 2050년까지 원전부지에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될 수 있다는 것인데, 정부의 2060년 영구처분시설 완공 계획을 무려 10년이나 앞당겨 여기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만만치 않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민은주 사무처장은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을 서둘러 지으려다 주민 수용성 확보에 실패하는 등 졸속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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