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깨진 '칠상팔하' 원칙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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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국가를 지배한 공산당 최고의 권력기구이자 의사결정기관이다. 국가주석을 포함한 7~9명의 상무위원으로 구성된 최고 지도부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는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 집권 때인 1970년대부터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 국가주석 집권기로 이어진 나라를 지탱한 힘이었다. 2018년 시 주석이 헌법에서 국가주석 3연임 제한 규정을 없애기 전까지는…. 집단지도체제는 31년간 절대 권력자로 군림한 마오쩌둥의 추종 세력이 벌인 문화대혁명에 대한 뼈저린 반성에서 비롯됐다.

2002년 16차 당 대회를 앞두고 당시 장 주석은 정적인 68세의 리루이환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정치국 상무위원에 연임하는 걸 저지해 권력을 공고히 했다. 이때 장 주석은 만 나이 67세까진 상무위에 진입할 수 있지만, 68세면 퇴진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른바 ‘칠상팔하’(七上八下)다. 이 원칙은 5년마다 열린 당 대회 시기에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 등 지도부 인선을 위한 불문율로 지켜졌다.

칠상팔하 원칙이 1997년 사망한 덩샤오핑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그가 마오쩌둥의 오랜 집권에 따른 폐해를 목도한 뒤 70세 이상 원로 간부들의 은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칠상팔하 관행이 굳어졌다는 게다. 폐지된 국가주석 연임 제한도 같은 취지였다. 칠상팔하는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순조로운 권력 교체로 이어져 정치 안정에 기여하고, 젊은 피를 수혈해 지나친 고령화를 막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 원칙은 지난 16∼22일 열린 20차 당 대회에서 깨지고 말았다. 올해 69세인 시 주석이 3연임을 확정 지은 데다 자신을 뺀 나머지 정치국 상무위원 여섯 자리를 죄다 측근으로 채우면서 칠상팔하 관례를 무시했다. 권력 서열 2위로 개혁 성향을 가진 리커창 총리와 왕양 정협 주석은 상무위원 유임이 가능한 67세인데도 이번에 물러났다. 반면 72세인 장여우샤 중앙군사위 부주석, 69세의 왕이 외교부장은 정치국원에 유임되거나 새로 선임됐다.

시 주석이 후계자 후보를 두지 않고 측근과 나이 많은 인물들로 새 지도부를 꾸린 건 1인 독주체제를 강화해 장기 집권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마오쩌둥 이후 처음인 시 주석의 3연임으로 중국의 패권주의나 미국과의 다툼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우리나라 안보와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진 만큼 윤석열 정부의 적절한 대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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