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대신 ‘사망자’ 표기 지침 내린 행안부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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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책임 소재 불명확해 중립적 표현”
여권에서도 “국민 정서 살피지 못했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 김종호 기자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 김종호 기자

 ‘이태원 압사 참사’ 수습에 나선 정부의 ‘공감 능력 부족’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사 이후 연일 “국정 최우선은 사고 수습”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정부 대응의 ‘디테일’을 보면 이번 참사의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참사 하루 뒤인 지난달 30일 전국 17개 시·도에 △참사→사고 △희생자→사망자 △피해자→부상자라고 표기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내렸다. 정부는 또 분향소 설치 장소도 시·도별 1곳, 조용한 실내 공간으로 정했고, 대형 참사 때마다 써왔던 ‘근조’ 리본은 ‘글씨 없는 검은색 리본’을 쓰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에 부산을 비롯해 각 시·도에 마련된 분향소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로 명명됐다.

 정부 지침은 이번 참사가 주최 측이 없는 행사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단순 사고라는 시각을 담으면서 이후 있을 책임 소재 규명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행정안전부 김성호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1일 “가해자와 책임 부분이 객관적으로 확인되거나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중립적 용어가 필요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 도심에서 155명이 숨지는 유례 없는 대형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책임 회피와 파장 축소 의도”라고 비판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정부가 명백한 참사를 사고로 표현해서 사건을 축소하거나,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현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위성곤 의원은 “이태원 참사의 155명 희생자가 그냥 죽은 사람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예민한 국민 정서를 세심하게 살피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 관계자는 “용어 사용이 추후 책임 규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이런 불필요한 논란으로 정부의 진정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 반복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사고 다음 날 아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고 상기시키면서 “공식적인 행정 문서에서 표현하는 것을 현 정부가 가진 애도의 마음과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반박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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