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트라우마 부채질하는 혐오 표현·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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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 유언비어와 조롱·폄하 SNS 확산
위로·공감 먼저 나누는 공동체 역할 필요

1일 오후 부산시청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조문을 마치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1일 오후 부산시청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조문을 마치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이태원 참사로 온 국민이 극심한 심적 고통에 빠져 있는데 희생자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혐오성 글들까지 무차별 확산되고 있다. 최소한의 사실 확인조차 거치지 않은 무수한 유언비어와 가짜뉴스들까지 가세해 희생자와 피해자 가족의 밑바닥 마음까지 할퀴고 있는 형국이다. 국가적인 재난 상황 앞에서 슬픔을 함께 나누지는 못할지언정 이런 식으로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를 가중시키는 2차 가해는 용납될 수 없다. 이를 엄단하고 막을 수 있는 대책이 정부 차원에서 서둘러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참사 현장의 목격자와 생존자, 구조 인력들의 경우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공황장애, 대인 기피증 등에 빠질 우려가 높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와 관리도 시급하다.


참사 당일부터 인터넷과 SNS 등에는 죽음을 조롱하고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글들이 잇따랐다. 사상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층을 혐오하고 희화화하거나 일부 외국인 희생자들의 국적을 비하하는 참담한 내용도 많았다. 마약이나 가스 누출이 사고와 연관돼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 사고 원인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 이슈화하려는 음모론의 제기도 개탄스럽다. 사상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이런 게시물들은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참혹한 현장 사진과 자극적인 영상의 무분별한 유포도 마찬가지다. 언론 역시 피해자와 가족들의 트라우마를 부추길 만한 혐오 표현과 선정적 보도는 자제해야 마땅하다. 〈부산일보〉도 피해자와 유가족의 명예와 사생활 보호에 적극 동참하고자 한다.

우리는 일찍이 세월호 사고로 고통스러운 집단 트라우마를 경험한 바 있다. 트라우마는 알다시피, 특정 사건에서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또 다른 경험을 통해 아픔을 느끼게 되는 질환이다. 이번 참사의 경우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친지 등 직접 관련자만 해도 최소 1000명에 이르고, 나아가 현장의 부상자와 목격자, 구조 인력까지 포함하면 무려 5000~1만 명이 트라우마의 1차 피해 범위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고 치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일부터 서울 지역 중심으로 열린 정신건강 검진 공간을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는데, 국가 차원의 트라우마 해소가 시급하다는 방증이다.

이번 참사는 사전 통제와 안전 관리로 막을 수 있었던 일종의 사회적 재난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과 혐오 등의 언동은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성숙하고 질서 있는 모습으로 재난을 수습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 피해자들은 당장 심리적 응급 처치가, 대중들은 자극적 영상과 유언비어 차단을 통해 감정의 왜곡을 막는 일이 급하다. 공감과 위로를 먼저 나누고 2차 고통의 확산을 막는 것이야말로 이 시점에 절실히 요구되는 공동체의 역할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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