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해운대온천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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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토박이들에게는 지금의 해운대는 타향처럼 낯설게만 느껴진다. 해운대 미포의 추억을 앗아 버린 바벨탑 같은 엘시티를 비롯해 우후죽순 들어선 아파트와 비즈니스호텔, 정체 모를 술집들로 해운대 원래의 매력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해운대 시외버스 종점과 해운대시장을 지나 할매탕 일대에는 온천객들로 북적거렸다. 해운대 아이들은 주말이면 부모님을 따라 송도탕과 서울온천, 청풍장 등지에서 목욕을 한 뒤 허름했던 금수복국에서 복매운탕으로 점심을 먹고, 해운대구청이 들어서기 한참 전 일본식 정원인 연못 근처에서 뛰어놀곤 했다. 해운대의 흔하디흔한 주말 풍경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해운대극장에서 영화라도 한 편 보는 날이면 횡재에 가까웠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이 되면서 해운대온천의 뜨끈한 열탕에 몸을 담그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도시에서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치유의 샘이자,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기도 하다. 해운대온천은 동래온천, 부곡온천, 도고온천, 수안보온천, 백암온천 등과 함께 예로부터 치료와 관광으로 유명했다. 바닷물이 지하 깊은 곳에서 150도까지 가열돼 지표로 상승하면서 수온이 60도 안팎으로 끓이지 않아도 되고, 칼슘과 나트륨 등 미네랄 성분이 월등히 높은 식염 온천으로 성인병에도 효능이 뛰어나다.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이 천연두를 나았다는 설화로부터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부산의 명물 해운대온천 영업장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소식이다. 해운대 온천원 보호지구에서 해운대온천을 활용하는 업소는 현재 대중목욕탕 3곳, 호텔 5곳 등 모두 8곳으로 21년 전인 2001년 대중목욕탕 11곳, 호텔·여관 16곳 등 모두 27곳보다 약 70%나 급감했다고 한다. 청풍장 대중탕은 2019년 폐업해 설렁탕집으로 바뀌었고, 고려온천탕은 2017년에 폐업했다. 삼성그룹 고 이병철 회장 별장 바로 옆 서울온천은 매각과 재개발을 통해 베니키아호텔 내 사우나로 재개장했지만, 그 거리의 북적거림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제 강점기, 해운대서 온천욕을 즐긴 문인 춘원 이광수는 “청송(靑松)으로 솔솔 불어오는 청풍(淸風)을 쐬면, 육신의 진구(塵垢)만 아니라 정신의 진구까지 씻어지는 것 같다”라고 적었다. 이러다가, 하늘이 부산에 베푼 최고의 선물인 해운대온천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더 늦기 전에 해운대만의 매력과 기억을 오래 보존하고 살릴 수 있는 성찰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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