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남해안 멸치업계 “풍력 환경평가협의회에 어민 입장 배제” 반발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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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어장 욕지도에 건설 추진
축구장 5000개 합한 면적 규모
인근에 발전소 2곳 더 진행
의견수렴기구에 업계 빠져
“반대 여론 고의로 없애” 지적

경남 남해안 멸치잡이 권현망업계가 산업통상자원부의 욕지도 해상풍력 발전사업 환경영향평가협의회 위원 구성을 놓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경남 남해안 멸치잡이 권현망업계가 산업통상자원부의 욕지도 해상풍력 발전사업 환경영향평가협의회 위원 구성을 놓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평생 일군 밥줄이 걸린 일인데, 또 우리만 쏙 뺐네요. 눈 가리고 아웅 하려는 거 아닙니까!”

경남 남해안 멸치잡이 어민들이 뿔났다. 문전옥답인 황금어장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도 있는 중차대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 최대 피해자가 될 당사자들이 빠졌기 때문이다. 민간 개발업자에 힘을 실어주려 불리한 여론을 고의로 지우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1일 연관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욕지도 해상풍력 발전사업’ 관련 환경영향평가협의회 위원을 위촉하고 서면심의를 요청했다.

환경영향평가 대상은 민간사업자인 A 사가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A 사는 2019년 욕지도 서쪽 8km 해상(구돌서 일원)에 384MW급 풍력단지를 만들겠다며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다. 단지 면적은 32㎢로 국제경기용 축구장 5000개를 합친 규모다. 이곳에 제트기 2배 크기인 14~17MW급 대형 풍력발전기 26개를 꽂는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장려 정책을 등에 업고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0~2034)에 반영됐다.

환경영향평가협의회는 공사 계획 인가에 필요한 평가서 초안 작성에 앞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민관 기구다. 그런데 정작 이해당사자가 배제된 사실이 드러났다. 산자부는 작년 8월, 재생에너지보급과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첫 협의회를 구성했다. 위원은 환경부, 학계, 통영‧남해‧사천 등 연관 지자체 담당공무원과 이들이 추천한 민간 전문가 등 11명을 포함했다.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황금어장을 지키려 집단행동에 나섰던 어민들. 통영‧삼천포‧멸치권현망 3개 해상풍력대책위원회는 2021년 11월 통영 욕지도 앞바다에서 정부의 무분별한 해상풍력발전 추진을 규탄하는 해상시위를 벌였다. 부산일보DB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황금어장을 지키려 집단행동에 나섰던 어민들. 통영‧삼천포‧멸치권현망 3개 해상풍력대책위원회는 2021년 11월 통영 욕지도 앞바다에서 정부의 무분별한 해상풍력발전 추진을 규탄하는 해상시위를 벌였다. 부산일보DB
해상풍력발전단지 건설 저지를 위한 해상시위 모습. 부산일보DB 해상풍력발전단지 건설 저지를 위한 해상시위 모습. 부산일보DB

이후 어민 측 대표로 지자체 추천을 받는 1명이 위원직을 수행하기 버겁다며 고사했고, 그때까지 협의회 구성 사실조차 몰랐던 어민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 와중에 사업자는 발전단지 규모를 늘리겠다며 사업계획 변경을 신청했다. 어민 반발을 의식한 산자부는 결국, 신청을 반려했다. 이 과정에 협의회도 해체됐다.

이에 산자부는 종전 계획을 토대로 협의회를 다시 꾸렸다. 이번엔 위원을 14명으로 늘려 현업 종사자 참여도 확대했는데, 반대 여론을 주도하던 멸치잡이 권현망 업계는 또 배제됐다. 업계는 “반대 목소리를 죽이려는 의도가 다분한 구성이다. 어민이 늘었다지만,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우리에겐 단 한 번도 협의나 제안이 없었다”고 언성을 높였다.

어민들이 정부와 맞서면서까지 강하게 저항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욕지도 인근은 난류를 따라 회유하는 멸치 떼와 이를 먹이로 하는 각종 포식 어류가 유입되는 길목이다. 멸치잡이 어민들에겐 연중 최고의 황금어장이 되고 있다. 바다장어를 잡는 근해통발이나, 삼치와 병어를 쫓는 저인망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런 곳에 대규모 풍력단지가 들어서면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A 사를 포함해 현재 욕지도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풍력발전소 사업만 3건이다. 또 다른 민간기업이 욕지도 동쪽 해상(좌사리도 일원)을 대상으로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다. 한국전력공사 산하 발전공기업은 남쪽 해상(갈도-좌사리도 사이) 풍황계측기를 설치해 사업성을 검토 중이다. 3곳 계획 면적만 150㎢로 서울 여의도의 50배가 넘는다. 대부분 지역 어선업계 주요 조업구역과 겹치거나 맞닿아 있다. 계획대로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면 조업구역 축소는 물론 해양생태계 파괴 등으로 경남 어업 전체가 무너지는 대참사가 불 보듯 뻔하다는 주장이다.

대규모 풍력발전단지가 추진되고 있는 경남 통영시 욕지도 주변 조업 현황. 어민들은 이 일대를 경남 최고의 황금어장으로 꼽는다. 수협 제공 대규모 풍력발전단지가 추진되고 있는 경남 통영시 욕지도 주변 조업 현황. 어민들은 이 일대를 경남 최고의 황금어장으로 꼽는다. 수협 제공
왼쪽은 민간사업자가 해상풍력 발전허가를 받은 구역(붉은선), 오른쪽은 작년 11월 멸치잡이 권현망 선단 조업 현황이다. 사업 구역과 조업 구역이 겹친다. 수협 제공 왼쪽은 민간사업자가 해상풍력 발전허가를 받은 구역(붉은선), 오른쪽은 작년 11월 멸치잡이 권현망 선단 조업 현황이다. 사업 구역과 조업 구역이 겹친다. 수협 제공

업계는 “발전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와 자기장, 소음, 진동으로 인한 어업 피해는 재앙에 가깝다. 특히 소음은 260㏈로 물고기의 청각에 이상을 일으킬 정도”라며 “어민들 죽여 전기 업자 배 불리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멸치권현망수협 최필종 조합장은 “정부는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등 허울 좋은 구호를 내세우면서 어민의 절박한 외침에는 귀를 막고 있다”면서 “특정 업종이 아닌 수산업계 전체의 문제인 만큼 연대 단체와 힘을 모아 사업이 백지화할때까지 맞설 작정”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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