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 평 첨단 부지서 5000명 직원 ‘전자산업의 쌀’ 요리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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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기 부산공장 가 보니

평균 연령 35세,부산서 가장 젊은 사업장
공장 입구부터 스마트폰 봉인 ‘보안 철저’
자동화로 MLCC 수백 층 겹겹이 쌓아 올려
삼성 비수도권 60조 투자의 핵심기지

삼성전기가 국내 최초로 공개한 부산사업장의 MLCC 생산 라인 클린룸(사진 위)과 손가락 위에 올린 MLCC(사진 아래). MLCC는 세라믹과 니켈을 수백 층 겹겹이 쌓아 제조된다. 삼성전기 제공 삼성전기가 국내 최초로 공개한 부산사업장의 MLCC 생산 라인 클린룸(사진 위)과 손가락 위에 올린 MLCC(사진 아래). MLCC는 세라믹과 니켈을 수백 층 겹겹이 쌓아 제조된다. 삼성전기 제공

공장 입구에서부터 스마트폰과 노트북 카메라에 모두 봉인이 붙는다. 철저한 보안이다.

보안 절차를 마치고 공장 안으로 들어서니 분위기는 또 다르다. 제조 공장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산뜻한 건물 사이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활보하는 건 20~30대 청년 근로자들이다. 국내 최초로 언론에 공장 내부를 공개한 삼성전기의 국내 최대 생산공장인 부산사업장 풍경이다.

취재진의 입에서 ‘부산 현장에서 보기 힘든 청년 근로자는 여기 다 있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직원 4770명이 근무하는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은 부산에서 가장 고용 인원이 많은 사업장이다. 근로자 평균 연령은 35세에 불과하다. 부산지역 제조업체 중에서 가장 젊은 사업장 중의 한 곳이다. 부지 연면적은 8만여 평에 달한다. 녹산산단 총 면적의 3.8%를 삼성전기가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의 주력 생산품은 ‘전자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MLCC(적층세라믹캐패시터)다. MLCC는 전기를 머금었다가 반도체 등 능동부품에 필요로 하는 만큼 안정적으로 공급해 원활하게 회로가 동작하도록 하는 부품이다. TV와 스마트폰, 심지어는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전자회로가 들어가는 모든 공산품에 사용된다. MLCC는 머리카락보다 얇다. 제조 공정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눈으로 일일이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최신형 스마트폰에는 1000개 정도, 내연기관 자동차에는 3000~5000개 정도의 MLCC가 들어간다고 한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은 1995년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에 발맞춰 자동차 부품 사업장으로 세워졌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 이후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서 철수하자 MLCC 쪽으로 업종을 선회했다. 그 전략은 주효했다.

삼성전기 측은 “전자부품 중 가장 작은 크기지만 내부에는 500~600층의 유전체와 전극이 겹쳐 있는 첨단 제품이 MLCC”라며 “300ml 와인 잔에 MLCC를 가득 채우면 최고 사양의 대형 세단 한 대 값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만큼 높은 가치를 지닌 고부가 부품이라는 의미다.

언론에 공개된 클린룸 안에서는 자동화된 기기가 바쁘게 세라믹과 니켈 시트를 번갈아 쌓는다. 유전체와 금속 파우더에 여러 첨가물을 넣어 종이처럼 얇게 인쇄한 뒤 쌓고 있는 것이다.


공장의 다른 층에서는 이런 식으로 수백 층이 쌓인 MLCC 패널을 1000도 이상 고열로 구워내고 있다. 도자기를 굽듯이 열처리하는 공정은 MLCC 제조에서 필수다. 원료 파우더에 어떤 첨가제를 넣는지, 어떤 온도에서 얼마나 굽는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층을 이뤄 전기를 축적할 수 있는지가 MLCC 공정의 첨단 기술이라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제조 설비는 20년이 넘는 기간 내재화를 거쳐 자동화됐다. 철저한 보안 속에 자동화 설비마저도 부산사업장에서 직접 설계해 현장에 비치하는 것이다. 기기 이상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최소한의 인력만 현장을 지키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부산사업장의 최대 장점은 원료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라인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이라며 “대부분의 핵심 설비를 사업장 안에서 설계해 만들어 쓰면서 내재화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삼성전기가 새삼 부산사업장을 공개하며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유는 자동차 시장이 내연차에서 전기차 시대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가 등장하면서 자동차 1대에 필요한 MLCC 수도 내연차에 비해 3배 가까이 늘고 있다. 부산사업장이 꾸준히 그 덩치를 불려 가는 이유다.

삼성그룹은 앞서 3월 비수도권 지역에 10년간 6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 부산에는 MLCC 특화단지를 조성해 지역 산업 생태계를 고도화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일본 기업들이 MLCC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내재화에 집중해 세계 MLCC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삼성그룹의 프로젝트 중지가 바로 이 녹산산단에 위치한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이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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