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세사기 피해 구제와 함께 근본 대책 세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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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정부 지원책만으론 미흡
현행 전세제도 결함 해법 찾아야

경매로 넘어가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 18억 원 잃을 처지에 놓인 부산 부산진구의 한 원룸. 이재찬 기자 chan@ 경매로 넘어가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 18억 원 잃을 처지에 놓인 부산 부산진구의 한 원룸. 이재찬 기자 chan@

부산시가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24일 발표했다. 변호사 등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담팀을 구성해 피해자들에 대한 각종 지원은 물론 사기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고 단속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정부도 특별법을 제정해 주택 구입 시 세금 감면 등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키로 했다. 전세사기 사례가 수도권과 부산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인되고 있고 피해 금액도 수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전세사기로 인해 세 명이 아까운 목숨을 스스로 버렸다. 정부나 지자체가 왜 좀 더 일찍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부산시가 이번에 내놓은 대책에는 전세보증금 대출이자·이사비·월세·소송비용 지원과 함께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심리상담 계획까지 포함됐다. 피해실태 조사와 사기 예방 시스템 구축도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특별법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사들여 시세의 20~30% 수준으로 재임대하고 피해자가 집을 살 경우 취득세 등 세금도 감면해 준다는 게 핵심이다. 모두가 피해자의 주거 안정에 초점을 맞춘 대책들인데, 벼랑에 몰린 세입자로서는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여지가 생긴 셈이다. 만시지탄이나마 이제라도 행정 당국이 피해자 구제에 전향적으로 나선 것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장 부산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집단행동에 나설 참이다. 부산시와 정부의 지원책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좀 더 촘촘한 구제 방안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 쏟아지는 각종 지원책은 미봉에 그칠 뿐, 보증금 회수 같은 피해자들의 가장 절실한 바람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이번 주에 발의하겠다는 특별법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법이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데다, 빚이 많아 경제적 여유가 없는 피해자에게는 재임대조차 그림의 떡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정에 어긋나는 지원책과 제도는 피해자들의 상처를 덧나게 할 뿐이다.

당면한 피해 구제의 긴급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변죽만 울리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피해 유형별 구제책이 마련돼 신속히 시행돼야 한다. 그러나 전세사기로 인해 지금처럼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사달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 사실 전세사기와 관련해서는 오래전부터 경고음이 울렸던 터다.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이 외면한 탓에 곪을 대로 곪아 결국 터졌을 뿐이다. 지금은 투기 목적의 '갭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등 현행 전세제도의 구조적 위험을 파헤치고 전세금을 집값의 일정 비율 이하로 묶는 전세상한제 같은 해법을 마련하는 일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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