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예타, 지역균발 배점 강화가 더 급하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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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경제부 금융·블록체인팀장

국회, 면제 기준 낮추려다 백지화
지방 "이대로는 지방 소멸" 호소
서울 "퍼주기식 사업 남발" 반대
지방 현실 반영한 기준 마련 절실

지난달 24일 부산 해운대에서 ‘부산 블록체인 콘퍼런스’가 열렸다. 덕분에 블록체인 산업과 크립토 분야 전문가들의 깊은 통찰력을 귀동냥할 수 있었다. 한데, 그날 기자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블록체인과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의 화자(話者)는 밝히지 않겠다. 내용은 백번 공감하지만, 발표 전언(全言)을 옮기지 못한 탓에 문맥 없이 전하는 그 시니컬한 뉘앙스가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어서다. 나이가 들수록 소심해진다. 여하튼, 다음과 같다.

“종종 지자체가 중앙의 기관 혹은 기능을 유치하고 싶어 저에게 중앙정부를 설득할 전략을 묻곤 합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자체의 강점을 들어 해당 기관과의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기보다 ‘우리 도시는 아무 것도 없다’ ‘해당 기관이라도 우리에게 주지 않으면 우리 도시는 소멸한다’고 사정하라고. 그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씀 드립니다.”


이 시니컬한 농담(?)을 그냥 웃어넘길 수 없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정곡을 찔렀다. 정말이지 울고 싶은 심정이다. 울어서라도 억지로 뭐라도 하나 더 가져오려는 것이 지방이요, 그런 지방을 곤란하게 바라보며 손사래 치는 것이 서울이다.

최근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이 있었다. 대규모 재정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이다. 지난달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는 예타의 면제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일부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예타 면제 기준을 현행 총사업비 500억 원(국비 300억 원 이상)에서 1000억 원(국비 500억 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게 골자다. 1000억 원 미만 사업은 예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 각 지자체는 마치 대한독립이라도 된 듯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중앙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수도권 정치인과 서울의 언론은 되레 “총선용 선심 쓰기에 국가 재정이 마른다”는 내용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연일 써댔다. 결국 며칠 뒤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여당은 해당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았다. 서울은 환영했고, 지방은 통곡하며 다시 상소를 올렸다. ‘만시지탄’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예타 논란에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것이 바로 가덕도신공항이다. 예타가 느슨하면 가덕도신공항 같은 예산 낭비 사례가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부산으로서야 숙원 사업을 ‘예산 낭비’라 치부하는 그들이 원망스럽다. 그런데, 예타 논란이 시끄러운 틈을 타 또 하나의 신공항 특별법이 공포됐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다. 대구 도심에 있는 군 공항과 국제공항을 경북 의성군과 군위군으로 옮겨 짓는 사업인데, 이 사업 또한 가덕도신공항처럼 예타 면제됐다.

대구는 축제 분위기다. 부산으로서야 같은 영남의 옆집 경사를 축하해야 인지상정이겠지만, 사정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촌이 땅을 사 배가 아픈 그런 사정은 아니다. 당장 가덕도신공항의 기능이 분산될까 걱정된다. 대구시는 미주·유럽 등 중장거리 노선도 다닐 수 있도록 활주로를 3.8㎞ 길이로 만들고, 국내 항공 여객 물류의 25%를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계획이다. 에어부산은 부산에 남을지 어떨지 불분명한 판국에, 티웨이항공은 대구로의 본사 이전을 확정하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가덕도신공항이 건설 중인데 굳이 부산과 1시간 생활권에 속한 대구에 대규모 신공항이 또 왜 필요하냐”는 말들이 나온다. 그런데, 왠지 많이 들어본 논리다. 부산이, 지역이, 중앙정부에 뭔가를 요구할 때 늘상 듣던 대답이다.

서울의 한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저도 부산 출신인 놈이 예타 기준 완화를 반대한다. “지방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한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다만 지방이 어려운 만큼 (투자)재원은 꼭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한다. 마치 남의 돈 가져다 쓰듯 어쨌든 예산만 많이 따면 된다는 식은 곤란하다.” 대꾸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는다. 경제성은 뒤로 한 퍼주기식 사업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경제적 효율성만 되풀이하는 중앙의 논리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지방의 경제규모가 형편 없이 쪼그라든 판국에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사업 타당성을 따졌다간 낙제점을 면하기가 너무 어렵다. 인구 부족으로 이른바 ‘비용대비편익비율’은 늘 낮게 나올 수밖에 없으니 필수 인프라는 깔리지 못하고 다시 인구 유출이 가속화된다. 예타가 제 역할을 하려면 예타 면제 기준 완화보다 지역균형발전 항목의 배점 강화가 더욱 절실하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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