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비판적 지역주의가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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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김지석, 로컬 가치로 아시아 지향
부산의 현실 이해 및 대안 제시

안도 다다오, 오사카 기반한 건축
독창적인 자기 세계 구축에 성공

우리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는 노력
부산 생각하는 방법적 실천 절실

떠난 사람의 빈자리가 유난히 커 보이는 때가 있다.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사태를 보면서 고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가 생각이 난다. 한참 영화제가 제 자리를 잡아 가던 2000년에 그를 초청하여 학생들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의 방향에 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한 이듬해인 1997년에 재직하는 대학에 동아시아학과가 개설되었고 2000년에 이르러 4학년까지 채워진 가운데 학생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강연은 중심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할리우드의 상업주의적 흐름을 벗어나면서 아시아적인 것을 지향한다는 요지의 내용을 품었다. 덧붙여 모흐센 마흐말바프와 같은 이란 감독의 예를 들면서 적은 자본으로 좋은 영화를 만드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지석이 제시한 부산국제영화제의 방향은 어떤 의미에서 부산에서 동아시아를 표방하는 우리 학생들의 공부에 유익한 시사점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는 부산과 아시아라는 두 가지 지점을 중요하게 부각하였다. 로컬에서 국가를 넘어 아시아 지역으로 나아가는 전망이다. 이는 두 겹의 시각인데 한편으로 로컬 부산의 구체적인 현실에 바탕을 두면서 다른 한편으로 아시아적 가치를 통하여 세계적 의미망을 형성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localism)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무엇보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 대한 앎과 책임 의식에 근거하면서 낡은 향토의 애착이나 기억을 반추하기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형성하는 실천을 지향한다. 그러니까 부산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면서 이로부터 비판적인 대안을 열어 가고자 한 수행이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비판적 지역주의의 기수라고 한 이는 건축사학자 케네스 프램튼이다. 그가 말하는 비판적 지역주의는 먼저 주변적 실천으로 대지에 세워질 구조물에 의해 성립되는 장소에 역점을 두는 건축을 지향하며 보편이라 불리는 모더니즘의 강제를 벗어남으로써 오히려 세계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안도 다다오가 서구 건축의 주류를 모방하지 않고 오사카의 풍토에 기반하면서 독창적인 자기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사실을 상기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그가 유명하기에 주목할 게 아니라 그가 지닌 사상의 표현 형태에 더 다가갈 필요가 있다. 미야케 리이치가 쓴 평전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는 안도가 지닌 사상적 기반이 비판적 지역주의임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안도는 철저하게 오사카의 구체적인 삶의 풍토를 인식하는 데서 건축을 시작한다. 일본의 중심인 도쿄 사람과 다른 인식과 실천이 그를 세계적인 건축가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여기저기에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축물이 있다. 가령 제주의 섭지코지에 있는 ‘유민 미술관’을 보면 그가 다른 지역에서 그 지역의 입장이 되어 어떻게 건축에 임하였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제주의 토지, 기후, 재료에 기반하면서 그 속에 바람과 햇빛과 풍경을 주위 환경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담아내려 하였는데 애초 이름을 ‘지니어스 로사이’(장소의 혼)라고 한 데서 그만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토속에 치우치지 않으며 현대적인 콘크리트 재료와 기하학을 바탕으로 개성적인 특이함을 표출하였다. 공해의 섬이 예술의 섬으로 바뀌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안도에게 제안한 후쿠다케 소이치로는 ‘도쿄의 건축가는 믿을 수 없다’라는 생각에서 그를 선택한다. 아마 안도 다다오의 입장도 그와 다르지 않았으리라고 평전의 작가는 추측하고 있다. 과연 우리도 이처럼 서울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기개를 표명할 수 있을까?

서울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지역 소멸을 운위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는 노력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비판적 지역주의가 더없이 긴요한 시점인데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장소에 대한 앎과 책임이 먼저다. 그다음으로 우리가 사는 지역의 눈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야 한다. 오사카 사람 안도 다다오가 오사카를 떠나 도쿄로 가지 않고서 세계적일 수 있었던 데는 그가 투철한 지역주의 사상의 표현자였기 때문이다. 아마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든 김지석 등도 부산을 진지로 삼아 아시아와 세계를 염원하였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비판적 지역주의는 많이 흔들리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인적 시스템이 문제라면 정파적 이분법도 문제다. 지역에 뿌리내리면서 서울이라는 중심 상징과 견결하게 투쟁하는 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부산이라는 장소를 생각하는 방법적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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