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마담, 지역문화예술을 일구는 그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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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아니세 샤를 가브리엘 르모니에의 ‘조프랭 부인의 살롱’. 아니세 샤를 가브리엘 르모니에의 ‘조프랭 부인의 살롱’.

1755년 조프랭 부인의 살롱에서 볼테르 신작 〈중국 고아〉의 낭독회가 열렸다. 볼테르의 흉상 앞에 루소와 몽테스키외 같은 계몽시대의 사상가들과 예술가, 문인들이 여럿 모였다. 〈백과전서〉를 펴낸 드니 디드로와 달랑베르도 함께했다. 〈중국 고아〉는 원나라 기군상(紀君祥)의 〈조씨 고아〉를 개작한 작품으로, 칭기즈칸을 감화시킨 중국인의 충절과 도덕을 찬양했다. 앙시앵 레짐 하의 프랑스 정치현실을 비판했던 볼테르는 중국의 정신문화를 높이 평가했다.

살롱은 17세기 절대왕정 체제의 산물이었다. 1608년 파리에 처음 문을 연 랑부이예 부인의 살롱은 이탈리아 궁정을 모델로 삼았다. 대저택에 호화로운 가구와 장식품으로 궁정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귀족 출신의 교양있는 여성이었던 마담은 귀족적 생활양식을 지향하면서도 지위나 신분을 막론하고 재능 있는 지식인들을 불러 모아 대화의 꽃을 피우거나 노래와 춤을 즐겼다. 17세기 살롱이 사교와 유희, 오락을 추구했다면, 18세기 살롱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조프랭 부인의 살롱은 검박했다. 시민계급 출신답게 사교나 오락보다는 새로운 생각의 생산과 유통에 관심을 두었다. 대화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살롱의 분위기를 단장했다. 이 시기 랑베르, 탕생, 데팡과 같은 스타 마담들도 많았다. 더러는 남성 세력자들과의 교분을 통해 정계 진출을 꿈꾸기도 했다.

하버마스는 소통과 민주적 힘의 원천인 공론장의 기원을 부르주아 공론장에서 찾았다. 공론장에서 문학과 예술, 철학을 논하면서 형성된 여론이 정치적 공간으로 진화해 나갔다고 보았다. 살롱도 그중 하나다. 살롱을 기반으로 사회적 경계를 넘나드는 문화집단이 형성되었으며, 다양한 생각을 교류함으로써 근대 지식체계가 무르익고 확산되어 나갔다. 살롱이라는 공간을 떠받친 힘의 근원은 마담의 재치와 지성이었다. 여성이 직접 담론의 생산을 주도할 수는 없는 시대, 마담은 공연과 전시 기획자, 담론 생산의 중개자, 문예활동의 실질적인 후원자였다.

지금 여기, 우리 곁에도 그들이 있다. 부산에서 작은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스페이스 움 김은숙, 나눌락 박선영, 음악당 라온 고민지, 게네랄파우제 김다은, BOF아트홀 윤장미, 무지크바움 강경옥이 그들이다. 세련된 안목과 취향으로 콘서트와 전시회, 토론회, 다이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이제껏 스페이스 움은 공연 500회, 전시 130회를 넘겼으며, 나눌락에서는 계간지 〈비:플랫〉을 내놓고 있다. 작은 문화공간은 담론 생산의 거점이자 지역문화예술 생산과 향유의 터전이다. 우리 삶이 자주자주 흔들리거나 쉽게 길을 찾을 수 없을 때, 현대판 살롱 작은 문화공간의 존재가치가 각별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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