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편집국] 나는 기록한다 고로 삭제한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김종진 기자 kjj176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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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잊힐 권리

온라인 활동 활발 동시에 개인 정보 유출 민감
과거 사진 조리돌림·딥페이크 악용 두려움 커
24시간 뒤 SNS 올린 내용 삭제 ‘인스스’ 선호
기자 이름·학교 검색하자 5분 만에 정보 줄줄
성향·사생활 등 통제 못 한 신상 노출에 당황


“소통은 하고 싶지만 흔적은 남기기 싫어요.”

육아정책연구소가 2019년 12개월~6세 자녀를 둔 부모 602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9.3%(375명)가 '자녀가 스마트 미디어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최초 사용 시기는 '만 1세(12~24개월)'가 45.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미취학 아동의 주 평균 인터넷 이용시간은 11.1시간에 이른다.

미디어 사용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을 접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Z세대까지 등장하면서 온라인 이용자의 개인 정보는 쉽게 노출된다. MZ 세대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개인 정보 노출에 민감한 모습을 보인다.


■수시로 기록 삭제는 ‘일상’

MZ 세대는 소통 채널인 SNS에서도 개인 정보를 남기지 않는 방식을 선호한다. 대표적인 SNS인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기능, 일명 ‘인스스’에서는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올린 뒤 24시간이 지나면 게시물이 사라지고, 누가 해당 게시물을 봤는지 추적도 할 수 있다. 김 모(29) 씨는 “게시물은 한 번 올리면 영원히 남아있지 않나. 어떻게 이용될지도 모르고 개인 정보를 노출하는 게 싫어서 주로 하루 만에 사라지는 스토리 기능을 사용한다”며 “내가 내 정보에 통제력을 지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에서도 판매 목록을 수시로 지운다. 대학생 강진아(22) 씨는 “중고 판매 목록을 보면 성별과 나이대를 유추할 수 있지 않느냐”며 “화장품이나 향수 등을 주로 거래하는데, 여자인 걸 알고서 이상한 메시지를 보낸 사람도 있어 목록을 수시로 삭제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현상은 오프라인에도 나타난다. 대학교 졸업앨범 사진 찍기를 꺼리는 게 대표적이다. 졸업앨범에는 사진뿐 아니라 전공 등 개인 정보가 담기고 단행본으로 제작·배포되기 때문에 온라인처럼 삭제하기 어렵다. 지난해 부산대에서는 희망자가 없어 졸업앨범 제작이 중단됐다.

올해 졸업 예정자인 김 모 (24) 씨도 졸업앨범 사진을 찍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친구들끼리 사진사를 고용해 스냅사진을 찍기로 했다. 김 씨는 “내 개인 정보가 박제돼 어딘가에서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조금 두렵다”면서 “과거 사진을 갖고 조리돌림을 하는 걸 많이 봤다. 딥페이크 기술도 발전하다 보니 혹시 내 사진도 이렇게 악용되진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기자 둘, 상대 정보 검색해 보니

개인 정보가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본보 박혜랑, 손혜림 기자가 아주 단순한 정보를 가지고 서로에 대해 직접 검색을 해봤다.

‘손혜림’과 ‘A대학’. 고도의 검색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단 두 가지 키워드 검색으로 5분 만에 손 기자의 각종 정보가 쏟아졌다.

먼저 대학 시절 각종 활동 게시물이 발견됐다. 이를 통해 여러 정보 유추가 가능했다. 학과 잡지에 투고한 글에서는 손 기자의 성향을, 잡지 발간 일자와 학년 정보를 종합하니 나이를 알 수 있었다. 대학 시절 사용한 메일 주소도 병기돼 있었다. 메일 주소 아이디를 기반으로 검색어를 조합하자 출신 고등학교가 나왔다. 이어 소소하지만 너무나 사적인 정보가 줄줄이 노출됐다. 무서운 느낌에 검색창을 닫았다.

사진·영상 자료도 찾아볼 수 있었다. 손 기자가 고등학생일 때 한 채용 설명회에 취재원으로 등장한 뉴스 영상도 아직 검색됐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장난스럽게 찍은 사진도 나왔다. 풋풋한 모습에 웃음이 났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5분 검색으로 알아낸 정보가 손 기자와 알고 지낸 3년 동안 얻은 정보량과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손 기자는 “어떤 정보가 나올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정보를 찾아서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번엔 손 기자가 박 기자의 정보를 검색했다. 구글 검색창에 이름을 치자 한 비즈니스 인맥 관리 사이트에서 직장명과 이름이 나온 게시물이 발견됐다. 바로 직장 정보를 알아낸 것이다. 입사 연도, 졸업 대학 등 꽤 세세한 정보가 나왔다. 출신 대학과 이름을 함께 검색하자 학교 커뮤니티에서 또 새로운 정보가 나왔다. ‘○○학과 박혜랑 학생이 학생증을 잃어버렸으니 가져가라’는 내용의 게시물이었다.

대학교 악기 동아리에서 활동한 내용도 나왔다. 이어진 페이스북 계정 링크를 클릭하니 당시 어떤 곡을 연주했고 친구들과 어디에 놀러갔는지 같은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확인됐다. 같은 동아리 친구들의 학과와 나이 정보도 쏟아졌다. 손 기자도 섬뜩한 느낌이 들어 검색을 중단했다.

박 기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한 정보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며 “내가 쓴 게시물만 있는 게 아닌 걸 보니, 내가 모르는 기록이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섬뜩하다”고 말했다.

글=박혜랑·손혜림 기자 rang@busan.com

사진=김종진 기자 kjj1761@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김종진 기자 kjj176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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