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나무 덧댄 알루미늄 자전거‘친환경’ 둔갑… 4억 ‘꿀꺽’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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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부 사업 등 국가보조금 6회 횡령 혐의
부산경상대 교수·직원 등 3명 구속 송치
제작 업체 전달 보조금 되돌려받는 방식
허술한 국가 공모 사업 눈속임 못 가려내
범행 가담 업체 대표 수사 전 극단 선택

부산 연제구 부산경상대 전경. 부산일보DB 부산 연제구 부산경상대 전경. 부산일보DB

기존 알루미늄 자전거에 나무를 덧대 마치 ‘친환경 목제 자전거’를 만들어 낸 것처럼 속여 기술 관련 공모에 응모하고 국가보조금 수억 원을 가로챈 대학 교수와 교직원이 적발됐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부산경상대학교 부동산과 교수인 40대 A 씨와 B 씨, 교직원 40대 남성 C 씨를 국가보조금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6회에 걸쳐 총 3억 9000만 원의 국가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가보조금을 빼낸 사업은 교육부 사업 1건, 중소벤처기업부 사업 1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업 4건으로 모두 6개다.

이들은 친환경 자전거와 유모차 등을 제작한 것을 내세워 공모 사업에 지원하고 국가보조금을 빼돌렸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것들은 없고 기존 제품을 변형하기만 했다. A, B 씨 등 두 교수는 2017년 사업 공모에 참여하기 위해 각각 가족들 명의로 법인을 설립한 뒤 특허권을 사들였다. 이후 세계 최초로 친환경 전기자전거·친환경 전기 유모차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며 국가보조금 사업에 신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환경 제품으로 만들어졌다며 제출한 시제품은 기존에 있던 자전거를 구입해 부품을 목재로 교체하거나 덧댄 것에 불과했다. 자전거의 나무 몸통 아래쪽에는 알루미늄 뼈대가 숨겨져 있었다. 친환경 전동 유모차라 속인 제품은 스티커로 유명 상표를 가려 놓기도 했다. 조잡한 눈속임에 국가 공모 사업 전체가 속아 넘어간 셈이다.

사업에서 선정된 뒤 제작 보조금을 업체에 전달하면 업체서 다시 교수들에게 돈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국가보조금을 챙겼다. 이들은 자전거 제조 판매 목적으로 설립된 업체 대표 D 씨의 계좌로 제작 지원금을 송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지원금은 계좌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적게는 1개부터 많게는 4개까지의 계좌를 거쳐 다시 A, B 씨의 계좌로 입금됐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의 계좌부터 학생 계좌까지 지원금 세탁에 사용됐다.

D 씨는 가공세금계산서를 만들어 A, B 씨의 횡령 사실이 기관의 최종보고서 검토 등 검증 과정을 피해갈 수 있게 도왔다. 그러나 공범인 D 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수사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교직원 C 씨는 A, B 교수가 설립한 법인의 계좌를 운영하며 서무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A, B 씨의 지시를 받아 지정된 계좌로 돈을 보내고 사업 기관에 결과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며 범행을 도왔다.

횡령 사실을 제보받은 교육부가 지난해 계좌 추적을 위해 해당 사실을 경찰에 고발하면서 이들의 범행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다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경찰의 통지를 받고 횡령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경상대는 이와 같은 범행을 벌인 교수 A, B 씨와 교직원 C 씨를 지난달 22일 면직 조처했다. 학교 측에서도 경찰 수사가 진행되기 전까지 이들의 범행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경상대학교 관계자는 “횡령 사실을 알고 있는 교수들이 학교 측에 먼저 알리지 않는 이상 학교로선 알 방법이 없었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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