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서 빚은 프리미엄 막걸리, 부산 대표 복합문화기업 꿈꾸다 [술도락 맛홀릭] <13>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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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락 맛홀릭] <13> 리큐랩 '설하담'

부산 영도구 농업회사법인 리큐랩에서 출시한 프리미엄 막걸리 '설하담'. 매콤한 한국 음식부터 치즈·크래커 등 다양한 음식과 두루 어울린다. 부산 영도구 농업회사법인 리큐랩에서 출시한 프리미엄 막걸리 '설하담'. 매콤한 한국 음식부터 치즈·크래커 등 다양한 음식과 두루 어울린다.

가가호호 술을 빚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100년 만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급된 지역특산주 면허만 1400건에 이르고, 해마다 새로운 양조장과 전통주가 탄생한다.

전통주엔 지역의 특색이 오롯이 담겼다.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어, 특산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부산일보>는 ‘술도락 맛홀릭’ 기획시리즈를 통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전통주 양조장을 탐방하고, 지역의 맛과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등 전통주 전문가도 힘을 보탠다.

몇 년 전 영도구에선 부산의 몇 안 되는 지역특산주 하나가 탄생했다. 청년 2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이 술은 생동감 넘치는 젊음처럼 변화무쌍한 시간을 보냈다. 출시된 지 4년, 30대 청년들이 40대로 익어 가는 동안 술맛도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부산지역 프리미엄 막걸리 ‘설하담’이 걸어온 그간의 여정이 궁금해 영도구 영선동으로 향했다.

■ 거듭된 변화로 완성한 맛

하양과 베이지, 연분홍 사이 어디쯤이지 싶다. 은은하고 오묘한 빛깔부터 예사롭지 않다. 농밀한 입자가 빚어내는 움직임도 흥미롭다. 가만히 두면 침전물과 맑은 층이 분리되는 여느 막걸리와 다르다. 고운 입자가 고루 뒤섞인 가운데 병 꼭지를 잡고 천천히 흔들자 구름이 유영하듯, 고요하던 입자가 부드럽게 움직인다. ‘설하담(雪河湛)’. 눈처럼 깨끗하게 빚어 다 같이 즐긴다는 이름과 어울리는 자태다.

“프리미엄 막걸리인 저희 술은 명확하게 30~40대 여성을 타깃으로 삼았어요. 술 이름도 여성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부르기 쉽고 예쁜 단어로 지었습니다.”

농업회사법인 리큐랩 김승언(40) 대표의 설명처럼 설하담은 이름부터 빛깔, 병 디자인과 라벨·포장까지 우아한 여성미가 물씬 풍긴다. 향과 맛도 외모의 느낌 그대로다. 잔을 가까이 하면 은은한 과실향이 번지고, 과하지 않은 단맛이 긴 여운으로 이어진다. 술향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알코올 도수 7도가 맞는지 고개를 갸웃할 정도다. 술이 약한 여성 혹은 남성이라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음료수 같은 맛이다.

흥미로운 건 초창기 설하담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는 사실이다. 2019년 가을 첫선을 보일 당시엔 스파클링 막걸리에 가까웠다. 원주의 지게미를 최대한 많이 걸러내고 인공탄산도 주입해, 깔끔하고 청량함을 강조한 맛이었다. 김 대표가 좋아하는 ‘복순도가’의 술과 비슷했다.

“지금 와서 보면 조금 부끄러운 술맛이었어요. 그다지 시장의 주목도 못 받았죠. 이후 2~3년 정도 꾸준히 술맛을 변화시켜 오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리큐랩 김승언 대표가 양조장 창업과 술 개발의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리큐랩 김승언 대표가 양조장 창업과 술 개발의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설하담의 농밀한 입자와 빛깔은 우유 혹은 쌀음료를 닮았다. 리큐랩 제공 설하담의 농밀한 입자와 빛깔은 우유 혹은 쌀음료를 닮았다. 리큐랩 제공

■ 우리 술로 빚은 꿈과 우정

설하담의 맛은 지난해 가을쯤 비로소 완성됐다. 이후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공동대상(탁주 생막걸리 부문)의 영예를 안았다. 첫 출품에서 수상이라 분명 경사이지만, 김 대표에게 이번 상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저희는 전통주 업계에서 말하는 소위 ‘정식 코스’를 밟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수상을 하게 된 거죠. 기본 소양을 갖춘 양조장이라는 최소한의 인정을 받았다는 정도로만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김 대표의 고백대로 설하담의 시작은 여느 양조장과 달랐다. 막걸리학교나 여타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수료한 경험 없이 오로지 독학으로 술 빚기를 연구했다.

팍팍한 서울살이에다 준비하던 시험에 연이어 낙방하며 미래를 고민하던 시절, 때마침 해외 무역회사에 다니던 고등학교 동창 이정석(40) 씨가 양조장 창업을 제안했다. 평소 술을 좋아하던 이들은 고향 부산에서 손을 맞잡았다. 중구 남포동에 조그만 공간을 마련해 리큐랩을 설립하고, 이 재료 저 재료를 써가며 술 연구에 몰두했다.

“술 연구란 게 특별하진 않아요. 그냥 냅다 빚어 보는 겁니다. 20kg짜리 쌀을 거의 100포대 정도 썼을 거예요. 일반 양조장 수준으로 빚을 수 있겠단 판단이 서자 영도 쪽으로 이사를 왔고, 이듬해에 설하담을 출시했습니다.”

출시 이후 리큐랩은 줄곧 2인 체제로 운영돼 왔다. 김 씨가 대표를 맡아 대외 마케팅과 디자인 등을 담당하고, 이 씨는 주조사로서 술 빚기 전반을 맡고 있다. 근래 소비자 호응으로 주문이 늘면서 최근에 친구 1명이 직원으로 추가 합류했다. 공교롭게도 3명 모두 사이좋게 83년생이다.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공동대상을 받은 설하담.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공동대상을 받은 설하담.
양조장의 발효조에서 익어 가는 설하담의 원주. 리큐랩 제공 양조장의 발효조에서 익어 가는 설하담의 원주. 리큐랩 제공

■ 부산 대표 브랜드를 향해

전통주 업계에 발을 담근 지 벌써 6년째. 변화를 거듭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도 방향은 한결같다. 전통주 등 발효 제품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기업이다.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복합문화 브랜드로 성장하는 게 최종 목표예요. 그러기 위해서 일단 설하담이 프리미엄 막걸리로서 완벽하게 자리를 잡는 게 첫 번째입니다.”

리큐랩은 설립 때 세웠던 프리미엄(고급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설하담 막걸리에 이어 청주·소주까지 프리미엄 3종 세트를 완성한다는 그림이다. 먼저 빠르면 올해 말쯤 청주(‘월하담’)가 출시될 예정이다. 이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음식도 함께 곁들일 수 있도록 공간을 확장 이전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막걸리를 빚을 때 나오는 지게미 등을 활용한 화장품 개발까지 구상하고 있다. 이 모든 계획의 본거지는 바다로 둘러싸여 부산의 지역성을 오롯이 품은 섬, 영도다.

“브랜드 가치를 높여서 지역과 잘 융합하는 게 지역전통주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남부에 가면 ‘레몬 첼로’라고 굉장히 다양한 레몬 술을 판매하거든요. 이미 유럽의 와이너리, 일본의 사케 양조장 등 술 선진국이 가고 있는 길이어서, 저희는 잘 따라만 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김 대표는 인터뷰 도중, 리큐랩의 방향이 앞서 전통주 대중화를 이끈 복순도가를 뒤따르는 ‘2등 전략’이란 점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선구자의 길을 잇겠다는 후발주자의 솔직한 진심. 왠지 설하담의 술맛과 닮은 것 같다.

부산 요트파티에서 선보인 설하담. 리큐랩 제공 부산 요트파티에서 선보인 설하담. 리큐랩 제공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설하담. 리큐랩 제공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설하담. 리큐랩 제공

■ ‘설하담’과 어울리는 맛은

설하담은 인공 첨가물 없이 쌀과 누룩, 효모만 넣어 빚은 단양주다. 쌀은 부산지역 가락농협의 멥쌀·찹쌀을 1 대 1 비율로 쓴다. 발효 2~3주, 저온숙성 1주 등 시중에 나오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린다.

좋은 원재료와 오랜 기다림. 그만큼 가격대가 있는 막걸리라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손쉽게 만나 보기 힘들다. 서울지역 고급 한식당과 신세계백화점(명동점), 와인숍(라빈리커스토어)을 비롯해 부산지역은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내 동백상회와 메가마트, 전통주 보틀숍 등지에서 만날 수 있다.

부드러운 목 넘김과 은은한 단맛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음식과 두루 어울린다. 특히 낙지볶음·제육볶음·두루치기 등의 매운 맛을 잡아 준다. 정반대로 치즈·파스타·견과류와도 궁합을 이룬다. 부드러움에 부드러움을 더하는 마리아주다.

영도지역 맛집으로는 양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왔다식당’에 들러볼 만하다. 30년 역사의 한우스지(소힘줄) 전문점이다. 맑은전골·된장전골·김치전골 중에서도 매콤·칼칼·구수한 맛이 일품인 스지된장전골이 대표 메뉴다. 신선한 한우스지에 두부와 고추·호박·파 등을 크게 썰어 넣었는데, 육수 대신 스지만 넣고 끓여 국물이 느끼하지 않고 개운하다. 설하담을 식전주로 곁들여도 좋고, 전골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뒤 입가심으로 마셔도 만족스럽다.

스지는 소 한 마리에 2kg 정도만 나오는 귀한 부위다. 주인장이 전국에서 공수해 온다. 늘 물량이 모자라 오후 2~3시면 가게 문을 닫기 때문에 일찍 방문하길 권한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왔다식당'의 스지된장전골. 칼칼하고 매콤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왔다식당'의 스지된장전골. 칼칼하고 매콤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기자들의 시음평]

▶남형욱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탄산이 거의 없고 적당히 달달해 먹기 좋다. 순한 막걸리 느낌. 해산물과 어울릴 것 같기도….”

▶변은샘 기획취재부 기자

“꽃향이 난다. 부드럽고 크리미해 우유처럼 술술 넘어간다. 끝에서 술맛이 살짝, 쌀음료 같다.”

▶김동우 편집파트 기자

“알코올 향이 세지 않아 목 넘김이 부드럽다. 단맛이 강해 안주 없이 단독으로 마셔도 좋을 듯.”

▶권채연 디지털미디어부 인턴

“요구르트 향이 많이 난다. 입 안에서 단향이 오래 지속된다. 치즈 같은 짠 음식과 어울릴 듯.”

[전문가의 맛 코멘트]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

“잔에서 밝고 뽀얀 느낌의 컬러가 보인다. 코를 갖다 대니 요구르트를 열었을 때처럼 약간의 새콤달콤함과 함께 유제품 계열의 향이 느껴지며, 이 캐릭터가 맛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라벨 문구 그대로 크리미하면서도 화이트 초콜릿을 살짝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적당한 단맛이 있다. 약간의 쌉싸래함이 뒤에 남아 단맛이 과하지 않도록 정리해 준다. 막걸리 입문자들, 특히 단맛 막걸리를 선호하는 여성들에게 추천한다.”

-제품명 : 설하담

-양조장 : 리큐랩(부산 영도구)

-내용량 : 940mL

-알코올 : 7.0%

-원재료 : 정제수·쌀·누룩·효모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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