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요즘 여행 이렇게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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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휴가철 새삼 고민하는 공정여행
책임·윤리 두루 갖춘 것이어야
자연 보호하고 문화 존중하면서
지역민 삶도 지키는 의미 가져
여행자와 현지인 모두 노력해야
지속가능한 여행문화 이루어져

며칠 전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 친한 언니에게서 신혼여행지에 대한 고민을 들었다. 주변으로부터 신혼여행은 휴양지로 가야 한다는 한결같은 조언을 듣고서 휴양지를 예약했다가 수수료를 감수하고 예약취소를 결심한 것이었다. 언니는 여행 내내 리조트에서 수영만 하는 건 지겨울 것 같아 주변에 선택관광을 신청했는데 동물원에서 사자와 같이 걷는 투어가 가장 유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역의 명물인 사자와 산책하는 투어에는 주의사항이 하나 있었다. 긴 막대기를 계속 들고 있어야 하고 막대기를 떨어뜨리면 사자가 덤빌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막대기를 잘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듣고서 언니는 이곳에 가는 게 맞을지 망설여졌다. 생각해 보니 긴 막대기는 몽둥이처럼 생겼고 사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몽둥이질을 당한 건 아닐까 상상할 수 있었다. 맹수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사자를 강아지처럼 쓰다듬고 함께 걷고 사진 찍는 일은 매우 이색적이지만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꼭 사자의 축하를 받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며 언니의 결정을 지지했다.


대화를 나누고 와서 오랜만에 공정여행을 떠올리게 되었다. 공정여행은 공정무역과 비슷한 개념처럼 여행지에서 쓰는 돈이 여행 지역에 보탬이 되는 여행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행객이 머무는 동안 현지의 동식물, 자연과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이자 현지 주민들의 삶이 지켜지는 여행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 여행업은 관광상품을 개발한 지역에 많은 일자리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효자산업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면에는 자연환경과 생태계가 파괴되거나 지나친 상업화로 지역의 고유한 문화가 훼손되거나 또는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떠나야 하는 ‘오버투어리즘’과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문제를 낳는다.

한 예로 NGO ‘투어리즘컨선’에 따르면 휴양지 여행객은 현지인보다 물 사용량이 최대 16배나 많아 호텔과 리조트는 투숙객에게 물을 제공하기 위해 지하수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지역주민들은 물 부족에 시달린다고 한다. 물론 편안히 쉬고 즐기러 간 여행이고 또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한 것이지만 내가 쓰는 물이 누군가가 마실 물은 아니었는지, 내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물이 지역의 농사에 필요한 물은 아니었는지 의식한다면 과도한 자원 낭비는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관련하여 예전에 문화마케팅 담당자로서 ‘가치 소비’ 테마의 행사를 진행할 때 공정여행 강연을 열었던 적이 있다. 당시 새로운 여행법을 알게 돼 반갑다거나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가 느껴진다는 호응을 얻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 생소하거나 미처 접하지 못하고 몰라서 이전과 익숙한 방식의 여행을 계속하는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후 다시 하늘길이 활짝 열린 이번 여름휴가 시즌에 공정여행에 관심이 생긴 독자에게는 가이드북 〈희망을 여행하라〉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책에는 책임 있고 윤리적인 여행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다만 이 책은 휴양지나 동남아시아 지역을 위주로 다루어 영미권 국가나 유럽 나라들을 여행할 때는 유용함이 부족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나름대로 발견한 여행 팁을 하나 공유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어느 도시에 여행을 가든 대학가를 방문하려고 한다. 대학교 근처에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맛있으면서 저렴한 식당이나 카페가 많고 동네 분위기도 경쾌하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캠퍼스투어에 참가하면 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정보도 얻을 수 있다. 기념품점에서 학교 티셔츠를 구매해 입고 다니면 현지 학생처럼 자연스럽게 지역에 스며들며 따로 여러 옷을 챙기지 않아도 돼 여행짐이 줄어드는 효과는 덤이다.

사실 여행을 하다 보면 자신만의 스타일이 생기곤 한다. 누군가는 맛집이 중요하고 누군가는 사진이 중요하고 누군가는 박물관이 중요하고 누군가는 깨끗한 잠자리가 중요하다. 취향에 따라서는 굳이 안락한 집을 두고 떠나는 여행을 환영하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낯선 장소에서 마주하는 아름다움과 일상을 벗어난 자유로움을 만끽해 본 사람이라면 그 매력을 잊기란 쉽지 않다. 다양한 여행법으로 때로는 편안한 여행이 아니라 조금은 모험적인 여행의 재미도 느껴 보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당연히 국내여행은 필수다. 공정여행을 실천하는 일 역시 비단 해외여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편으론 최근 논란이 된 지역축제 바가지 이슈가 알려주듯 여행자와 여행지는 서로 존중해야 하는 상호적인 관계다. 여행지의 자연과 문화와 환경과 주민들의 삶이 건강하게 지켜지도록 여행객이 노력하는 것과 함께 여행지역에서는 여행자가 따뜻한 기억을 안고 돌아가서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상생이 궁극적으로 공정여행이 꿈꾸는 지속가능한 여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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