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물과 불이 융화되는 마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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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4원소 의인화한 영화 ‘엘리멘탈’
이민자와 원주민 갈등 모티브
서로에게 끌리고 마는 ‘물’과 ‘불’
감동적인 우정과 사랑 이야기

영화 ‘엘리멘탈’.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엘리멘탈’.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민자의 역사’를 이다지도 흥미로운 서사로 풀어낸 작품이 어디 있었을까? 화려하고 거대한 도시 ‘엘리멘트 시티’에 도착한 가족은 대도시가 아닌 어느 변두리에 겨우 삶을 안착한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캐릭터들은 분명 기발하고 기막히게도 사랑스러운 게 분명한데도 묘하게 현실적이라 서걱거리는 기분이 든다.

피터 손 감독의 영화 ‘엘리멘탈’은 4원소, 물·불·흙·공기를 의인화해서 마법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현실에서 볼 법한 이민자(불)와 원주민(물)의 갈등이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다. 즉 원주민과 이주민은 서로가 ‘상극’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외에도 흙과 공기도 서로 다른 원소이기에 도시는 “서로 다른 원소끼리는 섞이면 안 된다”는 무시무시한 배제의 규칙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불 원소인 ‘엠버’의 부모가 고향을 떠나 엘리멘트 시티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처음 엘리멘트 시티에 도착한 그들은 다양한 원소의 모습과 거대한 도시의 외관에 놀라워한다. 하지만 그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은 대도시가 아닌 변두리에 위치한 불 원소들의 마을인 ‘파이어 타운’.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일 뿐이다. 그곳에 뿌리를 내린 그들은 딸 ‘엠버’를 키우며 잡화점의 주인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제 시간이 흘러 엠버의 아버지 ‘아슈파’는 딸 엠버가 가게를 물려받기만 하면 자신의 모든 꿈을 다 이룬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엠버도 아버지가 평생을 이룩한 가게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 한편이 개운치가 않은 그때, 시청조사원 ‘물’의 남자 ‘웨이드’가 찾아오면서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엠버네 가게가 허가받지 않은 건물이라며 폐업 조치를 통보하려는 한다. 물과 불. 전혀 다른 두 성질의 원소는 우연히 만남을 이어가면서 서로에게 끌리는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서로 섞이면 안 되는 성질의 것이 물과 불이 아니던가!

엘리멘트 시티에서는 불 원소와 다르게 물은 중심부에 거주하고 있는 주요 집단이다. 달리 말해 수로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는 이 도시에서 물, 흙, 공기는 어딜 가나 잘 섞이지만, 불은 차별을 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은 중심부에 포함되지도 못하며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주변부에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때 불의 여자 엠버와 물의 남자 웨이드가 도시의 수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주 부딪히며 둘의 우정이 싹트고 어느새 사랑이 꽃핀다. 뜯어말리면 더 뜨거워지는 법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들의 로맨스는 단순하지 않다. 나와 다른 성질의 원소,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 온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모습까지도 변화될 수 있는 일. 어쩌면 내가 사라질지도 모를 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 영화에서 그들이 서로의 소멸을 감내하면서도 서로에게 손 내미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 어떤 스킨십보다 애틋하고 짜릿하고 가슴 뭉클하다. 특히 ‘엘리멘탈’은 이민자의 이야기라는 서사적인 면에서도 기발하지만 CG도 황홀하다. 엠버는 불 원소답게 늘 이글거리고 있는데, 그 불꽃 안에서 풍부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물 원소인 웨이드도 전체가 순환하면서 흐르고 있는 몸을 표현하고 있으면서, 정 많고 눈물 많은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엘리멘탈’은 아버지 아슈파에 이어 앰버인 이민 2세대의 고민과 혼란, 그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품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실제로 한국계 이민 가정 2세인 피터 손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고, 한국계 애니메이터 4명이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 넣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기발한 상상력 뒤에 묘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는 이렇듯 누군가의 삶이 녹여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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