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소수 종에 의존하는 식량 시스템은 위태롭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사라져 가는 음식들/댄 살라디노

대량생산과 효율성만 추구
음식과 동식물 다양성 희생
“소멸 위기 식품 지켜야”

사라져 가는 음식들 사라져 가는 음식들

초기 수렵채집인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아프리카 동부의 하드자족은 꿀을 특별한 방법으로 채취한다. 벌꿀길잡이새라는 작은 새와 협업을 하는 것이다. 새는 바오바브나무 가지 사이에 숨겨져 있는 벌집을 찾을 순 있지만, 벌들을 제압할 수 없다. 반면 하드자족은 벌집을 찾아내기 힘들지만, 찾아내기만 한다면 연기를 피워 벌들을 제압하고 꿀을 얻을 수 있다. 하드자족은 전체 칼로리의 5분의 1을 꿀에서 얻는데, 그중 절반이 벌꿀길잡이새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하드자족은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 식용식물의 소멸, 꿀의 감소 등으로 사면초가 상태에 있다. 아마 수백만 년 동안 이어온 벌꿀길잡이새와의 상생 관계도 머지않아 끊어질지 모른다.

<사라져 가는 음식들>은 획일화된 맛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자연이 선사한 다양성의 가치와 의미를 전한다. BBC 기자이자 음식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우리가 잊었거나 존재조차 몰랐던 자연의 동식물을 재배하고, 채집하고, 사냥하고, 요리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아프리카 동부의 하드자 꿀, 튀르키예의 황금빛 밀, 한국의 천연기념물 오계를 비롯한 곡물, 채소, 해산물 육류, 디저트 등 34가지 음식과 동식물이 사라지는 비극을 증언한다.

작물 다양성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몇십 년 동안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그 시기에 작물 과학자들은 인류를 기아에서 구원하기 위해 벼와 밀 같은 곡물을 경이적인 규모로 생산할 방법을 찾아냈다. 작물을 넉넉하게 길러내려고 다양성을 희생한 것이다. 수천 가지 전통적 품종을 생산량이 극대화된 소수의 신품종으로 대체했다. 이들 식물은 빨리 자라고 더 많은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녹색 혁명이라는 명제 아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많은 농화학물이 투입되고 새로운 유전학이 적용됐다. 이로 말미암아 곡물 생산량은 세 배로 뛰었고, 1970년에서 2020년 사이에 인구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좁은 범위의 식물 종목과 극소수 품종에만 의존하는 세계 식량 시스템은 질병, 해충, 극단적인 기후에 취약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간이 먹어온 식물 6000종 가운데 지금 세계의 대부분이 먹는 것은 고작 9종뿐이며, 그 중에서도 밀과 벼, 옥수수 등 3종이 전체 칼로리의 50퍼센트를 제공한다. 여기에 감자, 보리, 야자유, 콩, 설탕을 더한 것이 인류가 쓰는 칼로리 전체의 75퍼센트를 담당한다. 녹색 혁명 이후 인류는 정제된 곡물, 식물성 기름, 설탕, 육류를 더 많이 먹게 됐다. 콩의 한 품종인 대두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농업 상품 가운데 하나다. 돼지, 소, 닭, 양어장 어류의 먹이로 사용되며 그런 동물들이 우리의 먹이가 됨으로써 대두는 수십억 인구의 점점 균질해지는 식단의 대표한다. 200만 년간 이어진 인류 진화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 인류 모두가 균일성을 지향하는 식단의 변화는 전례 없는 사건이다. 식단이 다양할수록 장내 미생물은 더 풍부해진다. 예를 들어 하드자족이 먹는 야생의 식단은 800가지 이상의 식물과 동물로 구성된다. 수많은 종류의 덩이줄기와 나무 열매, 잎사귀, 소형 포유류, 대형 초식동물, 새, 꿀 등이 포함된다. 하드자족은 고대의 인류 식단과 연결되는 살아 있는 고리다.

저자는 대량생산과 효율성만을 위해 개량된 극소수의 종에 기대고 있는 오늘날의 위태로운 식량 시스템에 대해 묵직한 경고를 던진다. 하나의 음식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와 세계를 연결해 주는 고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양한 음식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소멸 위기의 식품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식물과 동물들이 기근과 질병을 상대하고, 기후변화에 맞서며, 식단의 품질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 도구 상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댄 살라디노 지음/김병화 옮김/김영사/632쪽/2만 9800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