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시, 노래, 몸짓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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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랫말)와 노래(선율)는 본디 하나였다. 그 옛날 인간의 조상은 시와 노래, 몸짓을 엮어 제천의식을 치르고 즐거운 놀이로도 삼았더랬다. 문학(시)이 기도나 발원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얘기도 같은 말이다. 그것이 “지극해지면 종교의 뒷마당으로 떨어지고 더욱 곡진해지면 신화에 편입된다. 신화가 오래되면 민중의 입으로 널리 불리어 노래가 된다.”(이윤기) ‘구지가’ ‘헌화가’ 이런 노래가 다 그렇다. 노래는 의식이 아닌 무의식이 고른 것이다. 유행가가 오랫동안 살아남아 우리의 원형 심성을 흔드는 이유다.

아름다운 시를 노랫말 삼아 탄생한 곡들은 생명력이 길다. 가령 클래식에서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겨울 나그네’ 같은 연가곡집이 유명하다. 빌헬름 뮐러의 시를 우연히 읽고 크게 감동한 슈베르트였다. 직접 시를 골라 곡을 붙인 작품들은 짝사랑의 아픔, 병마와 고독처럼 자신의 상황과 겹쳐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조여 온다. 대중음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시가 노래요, 노래가 시다. 한국의 ‘시인공화국 정부’로 통하는 소월의 시는 대부분 유행가로 거듭났다. 우리 정서와 한을 간직한 시와 운율의 찰떡같은 궁합 덕분이다. 시와 노래의 친연성은 지금도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작업을 통해 그 유장한 맥을 잇고 있다.

최성수라는 가수가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텐데, 버클리 음대 출신으로 작곡을 전공한 실력파다. 지금도 곡을 만들고 부르는 엄연한 현역이다. 그는 시를 좋아해서 많은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올해 5월,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에 곡을 붙인 어버이날 헌정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7년에 이미 시 노래만 모은 앨범 ‘시가풍류방’을 내놓은 적 있다. 권재효, 도종환, 김현, 김용택, 안도현, 고은 같은 시인의 이름이 보이는데, 시적 정취에다 최성수 특유의 멋스러움이 잘 어우러진다.

27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시가음악회’는 이런 즐거움을 누릴 좋은 기회다. 시가 낭송되고 노래와 연주로 변주되는 건 물론 전문 모델들이 꾸미는 패션쇼, 샌드 아트까지 곁들여진다고 한다. 오감을 자극하는 컬래버 무대는 부산에서 보기 힘든 이색 풍경이다. 그 중심이 바로 시와 노래다. 최성수가 나와 자신이 작곡한 시 노래를 직접 부르고, 성악가들은 결이 다른 목소리로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시와 노래, 몸짓으로 구분되기 이전의 문화적 원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증이 생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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