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국익 보도와 기자의 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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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기사는 기자·출입처 간 줄다리기 산물
대통령에 유리하다고 국익 보도 아냐
언론, 국익 위해 대통령 감시·견제해야
의심·검증하고 질문 던지는 자세 필요

통념과 달리 뉴스는 대부분 현장이 아니라 기자의 출입처에서 나온다. 출입처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사가 나오도록 관리하고, 기자는 출입처의 언론플레이와 거리를 두고 비판적 시각에서 보도하려고 애쓴다. 뉴스는 이러한 줄다리기의 산물이다. 기자들은 초년병 시절 경찰서 같은 험한 출입처에서 노련한 취재원을 상대하면서 취재원의 발언을 늘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훈련을 받는다.

대통령 역시 권력의 기반을 여론의 지지에 두기 때문에 언론 관리라는 숙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드물지만 이러한 양자 관계에서 대통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보도가 전개되는 사안도 있는데, 해외 순방이나 정상회담이 그렇다. 기자들은 대통령실에서 제공하는 한정된 정보와 제한된 취재 여건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어 완곡하고 세련된 외교적 수사에 숨겨진 이슈를 들춰내서 취재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번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이처럼 일반적인 경향에서 벗어난 상당히 이례적인 일화를 여럿 남겼다.


첫째는 〈워싱턴 포스트〉가 윤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발언의 ‘팩트’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이때 대통령이 “나는 (중략)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한 내용이 보도돼 비판적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자 대통령실에서는 논란이 된 문장에서 주어(‘저는’)를 뺀 해명을 내놓으며 발언의 취지가 왜곡됐다고 주장했고, 여당에서도 발언 원문이 오역됐다며 반박했다. 자칫 제2의 ‘바이든-날리면’ 사태로 번질 법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녹음 파일로 검증한 결과, 기사가 대통령 발언을 글자 그대로 보도한 것이라고 못 박으면서 반발은 유야무야됐다.

두 번째는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국익과 관련된 민감한 질문이 제기되면서 대통령실의 자화자찬식 성과 발표가 무색해진 사건이다. 미국의 반도체 규제가 자국 이익만 극대화하면서 동맹국인 한국에는 피해만 입혔다는 비판이 무성했는데, 정상회담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은 이 이슈가 기자의 질문에서 튀어나왔다. 미국 정부가 동맹국 대통령실을 도청한 사안에 대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 측의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이 있었는가 하는 날카로운 질문도 나왔다. 방미 성과를 통해 지지율 상승을 기대한 윤 대통령에게는 모두 껄끄러운 질문이었다. 한국 기자들은 모두 침묵을 지켰고, 문제를 제기한 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ABC방송 등의 미국 기자들이었다.

앞서 언급한 두 일화는 대통령 관련 보도에서 일어난 새로운 변화의 추이를 보여 준다. 우선 대통령의 해외 방문이 더 이상 국내 정치와 언론플레이에 유리하게만 활용되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대통령의 발언이 해외 언론의 검증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높아진 국제 위상을 보여 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충분히 문제 제기가 예상되는 상황이었고 미국 기자들까지 질문을 던진 이슈에 대해 정작 한국 기자들만 한결같이 입을 닫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정상회담 직후 채택된 ‘워싱턴 선언’은 ‘사실상의 핵 공유’ 합의를 의미한다는 우리 측 발표가 미국 국장급 관리에 의해 바로 부인된 사실은 대통령실의 홍보가 팩트 측면에서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그동안 대통령실이 국내 언론의 받아쓰기식 보도와 허술한 팩트체킹에 익숙해진 바람에 나온 해프닝이기도 하다. 이번 방미는 여러모로 한국 언론의 취재 관행의 문제점을 드러낸 셈이다.

물론 언론의 이처럼 ‘자발적인’ 협조는 ‘국익’을 묵시적 명분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미국 기자들은 왜 자국보다 한국의 이익에 더 부합하는 질문을 던졌을까? 이들은 기자의 본분에 충실해 취재원에게 해야 할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국가의 수반이지만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이기도 한 대통령이 주장하는 국익과 기자가 추구하는 국익이 같을 수는 없으며 일치해서도 안 된다. 언론은 국익을 빌미로 대통령과 마치 한 몸처럼 처신하기보다는 대통령이 국익을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대통령 해외 방문 취재에 참가한 기자들은 모두 나름대로 언론계에서 인정받은 인재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벌어진 일화들은 순방 취재 관행의 제도적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파적 입장이나 취재원과 무관하게 의심하고 팩트를 검증하고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기자는 더 이상 기자라 할 수 없다. 설혹 이번 사건이 해묵은 취재 관행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수습기자 시절 훈련받은 기자의 책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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