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대한민국 연호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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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를 세는 방법, 즉 기년법(紀年法)은 민족·국가·종교별로 다르다. 가장 보편적으로 쓰는 서기(西紀)는 익히 알려진 대로 예수가 탄생한 해를 기원으로 한다. 유학자(儒學者) 중에는 공기(孔紀)를 고집하는 이도 있다. 공자가 태어난 해가 기준으로, 올해는 공기 2574년이 된다. 불교에서 쓰는 불기(佛紀)는 기준이 다르다.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 해를 원년으로 삼는다. 그에 따르면 올해는 불기 2567년이다. 이슬람력에서는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가 첫 이슬람 공동체를 세운 헤지라가 원년(서기 622년에 해당)이다. 우리 민족이 쓰는 단기(檀紀)의 기준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해(기원전 2333년)다.

기년법과 비슷한 의미로 연호(年號)라는 말도 쓰인다. 주로 근대 이전 아시아 지역에서 사용됐다. 중국 한 무제 때의 건원(建元),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의 영락(永樂), 대한제국 때의 광무(光武)처럼 대개는 새 왕이 등극하거나 새로운 왕조가 성립하면 그 치세 기간을 따로 부르는 명칭으로 통용됐다. 현대에 와서도 그런 연호가 공공연히 사용되는 곳이 간혹 있는데, 일본이 그렇다. 지금 일본의 연호는 레이와(令和)로, 나루히토 왕이 등극한 2019년부터 사용됐다.

기년법이든 연호든 그 칭호들은 민족이나 국가로서 갖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내포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기년법인 단기에서 그런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연호에 관한 법률’에 따른 우리나라의 공식 연호는 단기였다. 그런데 1961년 법을 개정해 서기를 공용 연호로 규정했다. 이후 단기를 공용 연호로 부활시켜야 한다는, 최소한 서기와 병용하자는 주장과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단군을 시조로 하는 한민족의 역사적 주체성을 잊지 말자는 게다.

광복회가 지난 22일부터 모든 공식 문서에 서기 대신 ‘대한민국 연호’로 연도를 표기해 화제가 되고 있다. 광복회가 말하는 대한민국 연호는 일제 때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사용한 연호다.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정부 수립을 선포한 1919년이 원년이다. 따라서 올해는 ‘대한민국 105년’이 된다. 광복회는 대한민국의 시작이 1948년 이승만 정부 수립 때라는 일부의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대한민국 법통의 뿌리가 1919년 독립선언과 상하이 임시정부에 있음은 이승만 정부 때도 인정됐고 현재 우리 헌법에도 명시된 바다. 광복회는 비록 일개 단체일 뿐이지만, 대한민국 연호 사용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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