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반지성주의적 역사 왜곡을 경계한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고대 한일 역사, 자의적인 해석 횡행
최근 활성화한 지역사 연구에 찬물
〈부산시사〉, 〈김해시사〉 편찬 차질
정치권도 이런 행태에 동조 움직임
각각 사료는 그물처럼 얽혀 있어
함부로 특정 목적 위해 왜곡 안 돼

작년 말 전라남·북도와 광주광역시가 2018년부터 5년간 24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방대한 〈전라도 천년사〉 총 34권을 편찬했다. 그런데 일본 고대의 사서인 〈일본서기〉를 자료로 활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사학으로 매도당하면서, 책의 간행이 지체되고 있다.

우리 부산도 다르지 않다. ‘식민사관청산 가야사 부산연대’가 올해 말까지 발간하려는 〈부산시사〉에 대해서도 임나(任那)를 한반도로 추정했다고 하여 비난하고 있다. 이웃 김해에서도 같은 이유로 〈김해시사〉의 편찬이 지연되고 있다. 이처럼 임나가 일본열도에 있었다는 1960년대 북한의 주체사관을 따르는 일부 사람들이 근년에 와서 비로소 활성화하고 있는 지역사 연구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임나가 일본열도에 있었다고 하는 주장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 주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1년 경남에서 발행되는 한 지역 신문에 김해에서 활동하는 한 스님의 글이 실렸다. 나말여초의 9산선문 중 경남 창원의 봉림산문을 개창한 진경대사가 일본열도에서 건너온 임나 왕족의 후예라는 터무니없는 내용이었다. 진경대사의 보월능공탑과 탑비는 모두 보물(제362·363호)로 지정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탑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대사의 이름은 심희요, 속성은 신김씨(新金氏, 김해김씨)이니, 그 선조는 임나의 왕족이자, 초발(草拔, 수로왕)의 성스러운 가지이다. 이웃 나라의 침략에 괴로워하다가 우리나라(신라)에 투항하였다. (스님의) 먼 조상인 흥무대왕(김유신)은 남산의 정기와 동해 바다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셨다’.

그런데 이 기록을 김해의 스님은 “대사의 선조는 임나왕족 ‘초발 성지(草拔聖枝)’인데, 매번 주변국 병사들에게 괴로움을 받다가, 우리나라의 먼 조상 흥무대왕에게 투항하였다”로 읽었다. 자의적인 해석이다.

왜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단정하는가. 우선 비문이 전형적인 사륙변려문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사륙변려문은 그 내용과 글자 숫자까지 대구로 만들어 글의 품격을 드러내는 문체다. 그런데 그 스님은 “매번 주변국 병사들에게 괴로움을 받다가 우리나라의 먼 조상 흥무대왕에게 투항하였다”로 길게 붙여서 해석하였다. 이런 구성은 비문의 전체 내용에서 달리 사례가 없다.

둘째는 흥무대왕 김유신을 신라의 먼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신라의 건국 주체를 김해김씨인 김유신으로 바꾸어 버리는 폭발적인 주장이다. 또 김유신이 진경대사와 관련이 없다면 왜 김유신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였을까. 상식적으로는 김유신이 진경대사의 먼 조상이기 때문에 그 공적을 설명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금관가야의 왕족이 신라로 들어가 신김씨로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도 부정하고 있다. 일본열도에서 건너온 임나왕족은 신분이 고귀하기 때문에 신라에서 신김 씨가 될 수 있었지만, 금관가야의 왕족들은 신라에서 새로운 김 씨로 인정받지 못했던 셈이다.

셋째는 초발(草拔)을 ‘쿠사나기’라는 일본의 성으로, 성스러운 가지(聖枝)는 ‘쇼오에’와 같은 일본식 이름으로 이해하였다는 것이다. 쿠사나기라는 성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일본에 없었고, 쇼오에도 요즘 여성 이름으로는 쓰일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남자 이름으로 쓰인 적이 없다. 또 이러한 이름을 가진 임나왕족이 있었다면 분명한 왜인이다. 진경대사는 왜인의 후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초발은 수로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넷째, 김유신은 595년에 태어났고 김해의 가야는 이미 63년 전인 532년에 멸망하고 없었다. 가야와 임나가 같은 나라라면 가야가 멸망한 후에 임나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임나왕족이 김유신에게 항복할 수가 없다. 설령 가야와 임나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일본서기〉에서도 임나는 561년에 모두 멸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임나왕족이 김유신에게 항복할 수 있는가.

이처럼 임나가 일본열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려다 보니, 수로왕의 후손이자 김유신의 후손인 진경대사를 왜인의 후손으로 만들어 버리는 충격적인 상황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해김씨인 김유신이 경주김씨가 세운 신라의 먼 조상이 되어버렸다.

한문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여러 사료가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역사를 멋대로 왜곡하는 반지성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시민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도 이런 반지성주의에 동조하는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 역사 연구도 인드라의 그물과 다르지 않다. 각각의 사료는 그물처럼 얽혀있기 때문에 하나만 다르게 해석하는 일은 쉽게 용납되지 않는다. 함부로 연기(緣起)의 그물, 역사의 벼리를 당기지 말라.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