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만난 새 가족’ 안창마을에도 노인 공유주택 생겼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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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안창 다함께주택’ 개소식
부산진구 2번째 노인돌봄공동체
혼자 살던 노인 8명 입주해 새 삶
2년 임대지만 계약 갱신도 가능
서로 보듬고 돌보며 공동체 생활
주민 사랑방으로 지역과도 소통

노인 공공 공유주택인 ‘안창 다함께주택’ 개소식이 28일 부산 부산진구 안창마을에서 열렸다. 안창 다함께주택은 주거 공간과 프로그램실, 빨래방, 카페 등을 갖추고 있으며 주거 및 돌봄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한다. 이재찬 기자 chan@ 노인 공공 공유주택인 ‘안창 다함께주택’ 개소식이 28일 부산 부산진구 안창마을에서 열렸다. 안창 다함께주택은 주거 공간과 프로그램실, 빨래방, 카페 등을 갖추고 있으며 주거 및 돌봄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한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안창 다함께주택’에는 여성 노인 8명이 산다. 평균 나이 79세. 노인 공유주택 다함께주택에는 음식점 사장부터 미용사, 인문학을 공부했던 이까지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온 입주민이 함께 지낸다. 이른바 혈연으로 이뤄진 정상가족은 아니다. 삶의 방정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서로를 돌보며 황혼을 함께 살아가는 또 하나의 ‘가족’이다. 입주민 반장 김판순(85) 씨는 “혈연 가족은 그들대로 삶을 만들어 나가고, 우리는 우리만의 삶을 살아간다”며 “서로 아프면 돌보고 보듬는 말벗 이상의 동반자이자 가족”이라고 말했다.

‘안창 다함께주택’의 문이 활짝 열렸다. ‘도란도란하우스’(부산일보 2월 16일 자 1면 등 보도)에 이어 부산진구의 두 번째 노인 공공 공유주택으로서 ‘지역 돌봄과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졌다. 이 같은 황혼 공동체 모델이 성공적으로 정착해 부산 전역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안창 다함께주택’ 공식 개소식은 28일 오후 3시에 열렸다. 입주민이 지난 4월부터 한 명씩 들어와 이달 정원 8명을 채운 것.


‘안창 다함께주택’ 커뮤니티 시설인 카페. 이재찬 기자 ‘안창 다함께주택’ 커뮤니티 시설인 카페. 이재찬 기자

안창 다함께주택은 부산진구의 두 번째 노인 공공 공유주택이다. 2019년 새뜰마을사업의 일환으로 2022년에 만들어졌다. 주는사랑복지재단이 부산진구청으로부터 수탁해 운영하는 다함께주택은 4층짜리 건물의 3~4층을 사용한다. 1~2층은 안창마을 주민과 입주민이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이용된다. 다함께주택에는 65세 이상 부산진구민 중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이면 누구나 입주할 수 있다. 방은 총 8개다. 임대 기간은 2년이지만 심사를 통해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할 수 있다. 공동생활이 가능한 건강 유지가 조건이다. 보증금 100만 원, 월세는 13만~18만 원 수준이며, 연간 구비 5000만 원을 지원받아 운영된다. 지난달 심사를 거친 8명 모두 입주를 완료했다.

입주민들은 여생의 지속 가능성을 꿈꾸며 이곳에 발을 들였다. 그들은 수년간 홀로 살아오면서 돌봄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노인은 혼자 살면 끼니를 챙겨 먹기 힘들어 건강이 악화된다. 무엇보다 아프거나 위급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마땅히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다. 부산은 8대 특별시·광역시 중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노인 돌봄망의 두께는 얇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프거나 가난해야만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 제도에서 배제된 노인이 남은 삶을 혼자서 살아가기란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같다.


입주민이 거주하는 방. 이재찬 기자 입주민이 거주하는 방. 이재찬 기자

입주민 이옥자(78) 씨는 누구보다도 돌봄 공동체가 필요했다고 한다. 이 씨는 2020년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거주하던 집에서 쓰러졌지만 이틀 동안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씨가 한참 보이지 않자 동네 주민이 그의 집을 찾았고, 이 씨는 겨우 병원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조금만 더 늦게 발견됐으면 지금 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었다”며 “심하게 아프고 나니 함께 생활을 영위해 나갈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두 달 정도 이곳에서 지냈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돌봄 공동체로 뭉쳐진 입주민들은 단순 의리로 생활을 꾸려나가지는 않는다. 세세한 규칙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동체를 유지한다. 돌아가면서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공용 공간 청소도 한다. 특정한 입주민의 희생을 요구하는 돌봄과 가사는 없다. 그림 그리기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머리도 곱게 손질해 주며 각자 재능을 공유한다. 저녁 식사 후에는 원하는 사람끼리 모여 함께 산책을 나가거나 체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각기 다른 8개의 음표가 조합을 찾으며 조화를 이뤄나가고 있다.

입주민 권경혜(70) 씨는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노인들이 모여 개인의 생활을 존중하면서 함께 황혼을 보내는 모든 순간이 즐겁다”며 “노인들이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공동체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소망을 내비쳤다.

다함께주택은 노인 공유 주거 모델이 될 뿐 아니라 지역사회 공동체를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도 다함께주택은 안창마을 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입주민과 마을 공동체가 소통하고 있다. 주는사랑복지재단 김익현 이사는 “대단위 실버타운보다 소규모 지역 밀착형 노인 공유형 주택이 많아져야 공동체 복원도 가능하다. 앞으로 이러한 모델이 많아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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