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법칙…“존재 의미는 지금 여기서 각자 만들어야”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유시민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돌베개 제공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돌베개 제공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과학 공부로 생명, 우주, 사회, 역사를 통찰하는 유시민의 책이다. 방송에 비평가로 출연하는 그 유시민이다.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글을 쓰며 산다는 그다. 깊은 통찰력과 적확한 표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무엇인가(뇌과학),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생물학), 단순한 것으로 복잡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화학),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물리학), 우주의 언어인가 천재들의 놀이인가(수학) 순으로 돼 있다.

사회주의 실패를 생물학의 ‘ESS(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모델’로 설명하는 부분을 보자. 생물학적으로 볼 때 소련은 ‘성실’과 ‘태만’이라는 전략을 인민들에게 선택하게 한 체제였다. 결국 ‘태만’이 소련 인민들의 생존 전략이 됐는데 사회주의의 큰 전제, 즉 이기심은 계급사회의 산물로 사회 변혁에 의해 없앨 수 있다는 믿음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기심은 계급사회의 산물이 아니라 ‘생물학적 본성’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소련은 미국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싸우다 졌다는 것이다.

뇌는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이기 때문에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본업이 아니다. 그에 따라 뇌에 깃든 우리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세월 따라 성격 태도, 나아가 신념 철학까지 크게 달라진 우리 주변의 A, B, C, D의 경우는 하고많다. 사상 전향도 뇌의 시냅스 연결망 변화로 생기는 현상의 하나다. 그 변화 요인은 먹이 짝 지위 권력 등 생존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들이다. 이것들이 뇌의 시냅스 연결망을 새롭게 편성하는 것이다.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들 중에 전향한 이가 많다. 쉽게 광복이 오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광복이 쉽게 오지 않는 세월 속에서 그들의 실제 목표가 광복이 아니라 권력이나 물질적 보상이었다면 친일 전향은 일관성 있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유전자에게 목적의식이나 지향은 없다. 그 무엇도 설계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복제가 목표일 뿐이다. 그래서 이타주의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두 가지 설명이 있다. 첫째는 멋있게 보여 짝짓기에 유리할 수 있어, 둘째 자신의 존재를 고귀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믿음 때문에 이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타 행동은 유전자 입장에서 볼 때 어떤 틈이다. 그 틈에서 우리가 말하는 인간성이니 하는 것들이 싹 튼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차원에서 볼 때 기후위기에서 지구를 구하자는 건 웃기는 말이다. 정작 구해야 할 것은 지구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 우리 자신이다. 지구는 인간이 사라진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묵시록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이다. 엔트로피 법칙의 핵심은 영원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다. 러셀의 말마따나 우리가 신을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 우주에는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고, 오래간다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주에도 자연에도 생명에도 주어진 의미는 없다. 하지만, 그래서 존재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과학 칼럼니스트 나탈리 앤지어의 말이다. “과학은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유시민의 결론 하나는 이렇다. “악과 누추함을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나의 시간을 살아내자.” 유시민 지음/돌베개/304쪽/1만 75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