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산 빵과 영화제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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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변곡점에는 언제나 빵이 등장한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빵과 물만 있으면 신의 삶도 부럽지 않다” 등 빵과 관련한 서양의 속담·명언에 공감하는 이유이다. 빵은 단순히 먹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역사를 내포하는 강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주인공 장발장은 굶고 있는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 갇혔다. 당시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극심한 흉년으로 하루치 빵값이 일당의 90%까지 치솟으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앙투아네트 왕비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말했다는 괴담에 가까운 소문이 돌자, 빵에서 시작한 시민의 원성이 결국 혁명의 깃발을 들게 했다. 빵이 혁명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빵은 구한말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소개한 것이 시초다. 이후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운영하는 소형제과점을 통해 단팥빵, 크림빵, 소보로빵, 술빵과 같은 일본식 빵들이 대거 유행하기 시작했다. 6·25전쟁 후 미국에서 다량의 밀가루 원조가 유입된 덕분에 한국에도 빵집이 많이 생겨났다. 특히 부산은 일본에서 배운 제빵기술자들이 밀집해 있고, 미국산 원조 밀가루가 부산항에 하역되면서 원재료를 구하기 쉬워 개인 빵집이 가장 번성했다. 지금도 대기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업체가 기를 펴지 못할 정도이다. 게다가 부산 중구 부평동 골목에는 제과제빵 도구와 재료를 파는 가게가 많아 ‘빵의 도시’라고 불리기에 충분할 정도이다.

빵의 도시 부산에서 빵과 영화가 결합된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빵, 행복을 굽다’란 주제로 ‘2023 부산푸드필름페스타(BFFF)’가 30일 오후 7시부터 영화의전당에서 사흘간 개최된다. 음식을 즐기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이번 영화제에는 ‘제빵사의 아내’ ‘슈가 앤 스타’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 ‘소중한 날의 꿈’ 등 인생 음식이 되어준 다양한 빵과 삶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 9편이 선보인다. 부산을 비롯해 전국 다양한 종류의 빵을 만나고, 전문가들과 함께 빵과 음식, 영화에 대해 심도있게 토론할 기회도 갖는다.

부산푸드필름페스타가 부산을 세계적인 미식·문화의 도시로 성장하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시민이 부산 음식이란 매개체를 통해 쉽게 접근하고, 사랑할 수 있는 영화제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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