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산의 공공 공연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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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피아니스트·음악칼럼니스트

부산오페라하우스 조감도. 부산일보DB 부산오페라하우스 조감도. 부산일보DB

1876년 조일수호조규로 부산이 개항된 후 부산은 서양 문물이 들어오던 첫 번째 도시가 되었다. ‘박래품(舶來品)’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개화기 상품들이 배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왔다.

그중 1884년 봄, 부산의 영국 부영사로 파견된 에드워드 H 파커(Edward H Parker)가 가져와 복병산 관사에서 연주한 피아노가 대한민국 최초의 피아노다. 그 후 1900년에는 부산에 도착한 다른 피아노가 낙동강을 거쳐 달성군 사문진 나루터를 통해 대구로 들어갔다. 대구는 자신들의 지역이 한국 최초라며 수많은 공연과 행사를 벌인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단 한 차례도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무려 16년이나 빠른데 말이다.

예술문화, 정신적 풍요·행복 선사

부산은 다양한 문화 섞인 용광로

공공극장 대표·예술감독 체제 필요

행정 경험만큼이나 예술 경험 소중

지역 문화전문가 발굴에 집중해야

HJ중공업은 7월 28일 공사가 멈춘 부산 북항 오페라하우스 공사 현장에서 전 직원 혁신대회를 갖고 조속한 완공을 천명했다. 부산일보DB HJ중공업은 7월 28일 공사가 멈춘 부산 북항 오페라하우스 공사 현장에서 전 직원 혁신대회를 갖고 조속한 완공을 천명했다. 부산일보DB

강제로 체결된 불평등 조약에 의한 개항이었지만 이후 부산은 국제항으로 탈바꿈했다. 한국전쟁 중에는 전국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대한민국의 용광로 역할을 했다. 모든 장르의 예술이 부산에서 꽃을 피웠다. 금수현, 윤이상, 이상근, 한형석, 김학성, 제갈삼 등 한국 현대 음악사에 방점을 찍은 음악가들도 많았다. 물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음악가는 전쟁이 끝나고 대부분 서울로 떠났지만, 끝까지 부산을 지키던 음악가도 많았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수많은 부침을 겪은 도시 부산은 가마솥 부(釜)자를 쓴다. 가마솥이란 온갖 것을 다 넣고 끓일 수 있는 솥이다. 부산과 같이 많은 문화가 섞인 지역은 우리나라 어떤 지역과도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다른 지역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것이 부산이 겪은 역사와 환경이다. 전쟁이 끝나고 70년 만에 우리는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다. 이제는 예술과 문화가 만드는 정신적 풍요와 행복을 누릴 때이다.

현재 인구 330만 도시 부산은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해 기초공연예술을 위한 ‘장르별 전용 극장’들이 건립 중이다. 도시경제 발전과 마케팅전략으로써, 그리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한 준비라는 측면에서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전용 극장이 생기면 예술가들의 일자리도 많아지고, 인구 유입도 늘어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산이 가진 성격,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먹을 수 있는 큰 가마솥이 되는 것이다.

부르디외가 말한 것처럼 ‘아비투스’는 돌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교육체계를 통해 무의식의 사회화가 만들어 내는 산물이다. 부산만이 가질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필요하다. 다른 지역의 공공극장에 아직 정립되지 않은 방식, 즉 부산의 모든 공공극장은 대표와 예술감독을 따로 두는 방식을 제안한다.

행정 경험만큼 중요한 것이 예술 경험이자 무대 경험이다. 예술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배운 경험은 책이나 논문과는 엄연히 다르다. 급하다고 깨진 항아리에 담긴 적은 물로는 솥을 식힐 수 없는 일이며, 장작 한 개비로 가마솥을 데울 수는 없다. 더디더라도 지역 중심으로 전문가 발굴에 집중해야 한다. 부산에도 기회를 얻지 못한 전문인력은 여전히 많다.

예술은 경험에서 나온다. 세계 최고를 목표로 삼지 말고 부산의 상상력, 우리만의 상상력으로 가장 부산다운 이미지를 보여 줄 때 독창적인 문화 예술이 이루어진다.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은 언제나 세계로 나가는 통로이자 세계가 들어오는 길이었다. 전문가가 제대로 기획한 가마솥 부산을 세계에 보여 주자. 가장 부산다운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부산에서 만든 도시 브랜딩은 BIG(Busan Is Good)이다. 물론 뜻은 좋다. 그러나 이웃한 부산의 자매도시 상하이만 봐도 인구 2400만이 넘는 대도시다. 우리가 덩치로 주변을 이기기는 어렵다. 세상에서 가장 큰 솥이 아니라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가장 아름다운 솥이라야 한다. 부산만의 문화와 예술이라는 황금이 가득 담긴 금솥(金釜)으로 만들자. 가마솥은 전체를 데우는 데 오래 걸리지만 데워지면 쉽게 식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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