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회피하는 사람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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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공무원들
책임 의식 결여된 고위 공직자 많아
행정 잘못으로 생긴 관재 잇따라도
공직윤리 망각하고 자리 보전 급급
남 탓하며 관료사회 보신주의 키워
지위·친소 불문 엄정 처벌이 해결책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 헌법 제7조 1항 규정이다. 공무원이 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에서 공복(公僕)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공무원 중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시도교육감 등 선출직은 주권을 가진 국민의 투표를 통해 뽑혀 공익을 위해 복무하는 만큼 공복의 성격이 더욱 짙다. 그래서 이 선량들 가운데 상당수는 선거 기간에 유권자에게 충실한 머슴을 자처하며 머리를 조아릴 정도다.

공무원이 국민을 섬기며 국가에 헌신하는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맡은 역할에 책임을 다하고 잘못한 점이 있으면 기꺼이 책임도 지는 자세가 그것이다. 이는 말단에서 최고위까지 전 공직자가 잘 숙지하고 마땅히 지켜야 할 공직윤리의 하나다. 그 책임의 정도는 부여된 권한, 직책, 지위에 따라 달라질 테다. 권한이 크고 많은 고위직, 요직일수록 감당하는 책임감의 무게는 커진다. 바로 세간에서 얘기하는 ‘공직의 무게’다. 공무원에겐 일반 직장인과 다른 투철한 사명감이 필요하며, 자리나 임무에 걸맞은 책임 의식이 요구된다는 게 사회의 통념이다. 국민이 낸 혈세로 충당한 국록(國祿)을 먹는 직업이 공무원인 까닭이다.

작금의 공직사회 현실은 국민 기대치와 달라 문제다. 공무원의 무책임이 낳은 인재로 드러난 사건사고가 빈발한 반면 제대로 책임지는 고위 공직자를 보기 힘들어서다. 지난해 10월 29일 159명이 허망하게 희생된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는 책임을 회피하는 최고위층 인사들의 건재 속에 잊히고 있다. 지난달 15일 14명이 숨진 충북 청주 오송지하차도 침수 참사에 직접 관련된 여러 기관장 역시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 폭우 실종자 수색 중 해병대원이 익사한 사고의 군당국 수사는 고위급을 빼 외압 논란과 함께 꼬리 자르기란 비난이 인다.

문제가 생겨도 힘 있는 고위 공직자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도의적인 책임조차 외면하기 일쑤다. 책임감은 물론 도덕성과 윤리 의식까지 상실한 셈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고위직의 무게감에 어울리지 않는 행태다. 힘들게 오른 자리를 눈치 보며 요령껏 보전하다 나중에 원하는 곳으로 옮겨가는 징검다리로 삼을 심산이지 싶다. 최근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전관업체들 간 계약 남발과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가 이를 방증한다. 고위 공직 출신을 위한 전관예우는 경제계에 팽배하다.

이 지경이니 윗선에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행정을 주문해도 령(令)이 안 서 하위 공무원에게 먹혀들 리 만무하다. 괜히 열심히 일하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보호받기는커녕 무책임한 고위직의 희생양이 될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신입 공무원의 퇴직 증가, 경찰의 순경 부족 현상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결국 관료사회에 ‘철밥통’ 소리를 듣는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으로 점철된 보신주의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창의적인 업무와 각종 규제 완화·해소가 말처럼 쉽지 않고 비슷한 재난이 반복되는 원인이 있다.

대표적 선출직 고위 공직자로 꼽히는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권의 책임감이 결여된 남 탓 타령은 고질적인 책임 전가의 극치라고 할 만하다. 여야는 일본이 24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할 때까지 시간이 많았으나 머리를 맞대 대책을 마련하는 협치 대신 상호 사생결단식 정쟁으로 일관했다. 국민의힘은 방류의 위험성을 외치는 더불어민주당을 괴담 유포 세력으로 성토하고, 민주당은 안전하다는 정부·여당을 맹비난하느라 바빴다. 어민과 상인들이 수산물 소비 실종에 직격탄을 맞아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양당은 이달 11일 파행으로 끝난 전북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부실 운영의 책임을 놓고도 각각 전·현 정부의 무능 탓이라며 거센 공방을 벌인다.

모두 국민의 불쾌지수를 높이고 희생자 유족과 피해자들의 아픔을 키우는 처사다. 정부가 중대 관재(官災)가 일어날 때마다 원인과 책임 소재를 철저히 규명해 지위고하와 친소관계를 불문하고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비로소 공직윤리가 확립돼 근무 기강이 바로 설 게다. 여야도 국회에 수북이 쌓인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면서 비위 연루 의원을 단호히 내치는 등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건 요원할 뿐이다. 지금은 직무 유기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는 국회를 탄핵할 수 있는 법이나 국민의 국회의원 소환제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계와 정치권에 민생 안정과 경제 성장이란 대의를 위해 제 살도 도려내는 ‘읍참마속’의 각오를 촉구하는 것은 무리일까. 나라 안팎에 위기를 동반한 악재가 즐비하다. 모두에게 강한 책임감이 필요한 시기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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