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우즈벡 사마르칸트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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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봉오동·청산리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독립군 영웅 홍범도 장군.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의 홍 장군 흉상 철거·이전 방침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무장 항일투쟁 과정의 옛 소련 공산당 가입 전력을 문제삼은 것인데, 지양해야 할 이념 과잉이 빚은 소모적인 논쟁으로 보여 안타깝다. 홍 장군은 1937년 소련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 탓에 연해주 일대 동포 20만 명과 함께 척박한 중앙아시아로 쫓겨난 비운의 독립운동가다.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극장 수위로 생계를 이으며 힘든 말년을 보내다 1943년 숨졌다. 그의 유해는 2021년 8월 꿈에 그리던 고국에 봉환됐다.

홍 장군이 살았던 카자흐스탄에 이어 강제 이주 동포(고려인)가 가장 많이 정착한 곳이 우즈베키스탄이다. 고난의 장거리 이동에서 살아남은 17만여 명은 카자흐스탄 9만 5256명, 우즈베키스탄 7만 6525명 등으로 분산됐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대부분은 중동부 지역 사마르칸트로 갔다. 이들은 근면성을 바탕으로 불모지 개간과 집단 농장 조성에 힘써 빠르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이주 1세대의 억척스러운 삶에 힘입어 후손들은 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된 생활이 가능했다. 하지만 1991년 소련 연방 해체로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에 배타적 민족주의가 강해져 이 나라 고려인 18만 명은 입지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우즈베키스탄과 우리나라의 인연은 이보다 훨씬 오래전에 있었다. 고구려가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번성한 고대국가 강국(康國)과 교류한 것이다. 1965년 사마르칸트에서 발굴된 아프라시압궁전 벽화에 7세기 이곳 왕을 만나는 고구려 사신 2명의 모습이 나온다. 726년 신라 승려 혜초도 강국을 들렀다고 〈왕오천축국전〉에 썼다. 사마르칸트가 실크로드 가운데 위치해 고대부터 동서양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28~29일 온통 부산이 화제가 됐다. 지난 22일 2030월드엑스포 유치 응원을 위해 부산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한 ‘유라시아 시민대장정’ 일행 80여 명이 사마르칸트에 머물며 다양한 친선 행사를 갖고 부산을 홍보해서다. 29일 현지에서 부산과 사마르칸트 간 우호협력도시 협정이 체결돼 방문의 의미를 더했다. 자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무역·관광·교통 요지라는 게 두 도시의 공통점이다. 양도시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져 지역 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번 협정 체결이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어깨가 으쓱해지는 계기로도 작용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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